[오양심 칼럼] 혼동하기 쉬운 한국어 ‘가르치다’와 ‘가리키다’의 차이

오양심 2024-03-20 (수) 12:02 1개월전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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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양심/ 한글세계화운동연합 이사장 

 

 

‘가르치다’는 교육에 해당된다. 지식, 기능, 이치 등을 깨닫게 하거나 익히게 하는 것이다. '가리키다'는 방향에 해당된다. 손가락으로 또는 손으로 대상을 꼭 집어서 보이거나 말하거나 알리는 것이다. 염려스러운 일은 교단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들이 ‘가르치다’와 ‘가리키다’를 구별하지 못하고 실수를 남발하고 있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하물며 일반인들의 한국어 실력은 오죽하랴. 

 

‘가르친다’고 하는 교육에 해당하는 고사성어가 있다. 첫째 ‘교학상장(敎學相長)’이다. 가르치는 일과 배우는 일이 자신들의 학업을 성장시킨다는 뜻으로, 스승은 학생을 가르치면서 배우고 제자는 스승에게 배우면서 성장한다는 것이다. 

 

둘째, ‘후생가외(後生可畏)’이다. 뒤에 난 사람을 두려워할 만하다는 뜻이다. 제자나 후배가 스승이나 선배보다 훨씬 나을 때 쓰는 후생각고(後生角高), 청출어람(靑出於藍)과 같다. 다시 말해서 자기보다 나중에 태어난 후배는 나이가 젊어서 학문을 계속 쌓고 덕을 갈고 닦으면, 지식과 덕망이 선배를 능가한다는 것이다. 후배가 오히려 선생이 되어, 장래에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가히 두려운 존재가 된다는 경종을 울려준다. 

 

셋째 ‘효학반(斅學半)’이라는 고사도 있다. 학학반(學學半), 교학반(敎學半)이라는 뜻과 같다. 남을 가르치는 일은 자기 학업의 반을 차지한다는 말이다, 학업의 반은 남을 가르치는 동안에 이루어짐을 이르는 말로, 가르치는 일의 절반은 자기 공부라는 것이다. 

 

‘가리키다’는 것은 방향에 해당한다. 첫째, 손가락이나 물건을 어떤 방향이나 대상으로 향하게 하여 다른 사람에게 알려줄 때 쓴다. 칠판에 적어놓은 글을 가리키며 설명하다. 집이 어떤 쪽인지 방향을 가리키다. 눈으로 왼쪽을 가리키다. 손으로 오른쪽을 가리키다. 손가락으로 먼 산을 가리키다. 세 살짜리 아이가 땅에 떨어뜨린 아이스크림을 가리킨다. 형사의 질문에 범인은 말없이 검지손가락으로 뒷문을 가리킨다. 식당주인은 화장실을 묻는 손님에게 턱으로 우측을 가리킨다.

 

둘째, 시계나 온도계의 바늘이 시각이나 온도 등을 알려 줄 때 쓴다. 나침반이 남쪽을 가리키다. 바늘이 북쪽을 가리키다. 시간이 정오를 가리키다. 시계가 가리키다. 동서를 가리키다. 도자기 온도가 1250도를 가리키다. 오후 세 시를 가리키다. 해 그림자가 점심때를 가리키다. 정신없이 일하다 시계를 보니 시계바늘이 밤 열시를 가리키고 있다. 저울의 눈금이 육백그람을 가리키자 정육점 주인은 고기를 썰던 손을 멈춘다. 아이의 체온을 재던 엄마는 온도계의 눈금이 삼십 구도를 가리키는 것을 보고 놀라 나자빠진다. 

 

셋째, 어떤 사실이나 내용, 대상을 말할 때 쓴다. 세종대왕 기념관에 위치해 있는 원은 세자와 세자빈, 왕을 낳은 후궁과 아버지의 무덤을 가리킨다. 죽고자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필사즉생항생즉사(必死則生 幸生則死)라는 말을 남긴 이순신을 가리켜 우리는 성웅이라고 한다. 초졸 학력으로 일본공영을 이긴 현대건설 정주영 회장을 가리키며 전 세계가 경악했다. 정치만 잘하면 선진국이라고 세계인이 일제히 한국을 가리키고 있다. 

 

지금은 인공지능시대이다. 인간의 인지, 추론, 판단, 정보 등의 모든 능력이 컴퓨터에 접목되어 있다. 혼동하기 쉬운 한국어를 끊임없이 갈고 닦는 일에 힘써 정진하면, 가르치는 스승은 배우는 제자들 앞에서 망신당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물론 일반인들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어 공부에 대하여 꾸준히 연구하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덕망도 높아지고 지혜도 밝아져서 존경받는 인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