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우 수필] 비밀의 방, 내 친구⑪

오양심 2020-06-25 (목) 07:24 3년전 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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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우/ 일본동경한국학교 교감
한글세계화운동연합 일본본부장

 ““**야, 나랑 꿀밤 주우러 갈래?”
  학교에서 내 짝인 **는 여자 아이지만 행동은 꼭 남자 같습니다. 놀 때도 여자 아이들보다 남자 아이들과 더 잘 어울려 놀고 하는 일도 남자 아이 같습니다. 특히 힘쓰는 일은 보통의 남자 아이들보다 더 잘 합니다. 난 그런 **를 마음속으로 은근히 좋아했었습니다. **가 무슨 말을 걸어오면 괜히 얼굴이 빨개지기도 했습니다. 혹시 여자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은 지우개나 연필이 생기면 몰래 필통 속에 넣어주기도 했습니다. **는 공부는 잘 못했지만 다른 것들은 모두 잘 했습니다. 달리기도 운동도 이등 하라면 서러울 정도였습니다. 무엇보다 나의 마음을 잘 이해해주었기 때문에 내가 좋아했습니다.

나는 당시 동네에서 둘 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말썽꾸러기에다가 장난꾸러기였었습니다. 어른들조차 못 말리는 골칫덩어리였습니다. 집에서는 8명의 형들이 있어서 꼼짝도 못했지만 밖에만 나오면 그 스트레스를 말썽쟁이 행동으로 풀곤 했던 것 같습니다. 멀쩡하게 잘 자라는 작은 박 껍질에 구멍을 내고 거기에 오줌을 싸 놓으면 그 박은 겉은 그대로 자라지만 나중에 박을 쪼개보면 속은 모두 썩게 됩니다. 그 외에도 수박서리, 참외서리, 콩서리는 기본이고 심지어는 병아리를 까기 위해 알을 모으는 씨암탉을 잡아서 구이를 해 먹기도 했습니다. 철없는 작은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나쁜 짓을 시키기도 하고 이웃동네까지 쳐들어가 옆 동네 아이들과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었습니다. 눈싸움을 하면서 눈 속에 돌을 넣어 던져 치료비를 물어주기도 했습니다.

나무로 긴 칼을 만들어 다니며 당시 유행했던 유명 연예인의 칼싸움 흉내를 내다가 재미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실제 칼을 이용해 흉내를 내다가 손가락을 날려버리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제 오른쪽 중앙 손가락은 약지보다 짧습니다. 이처럼 어른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여러 가지 나쁜 일들을 일삼곤 했었습니다. 너무 큰 사건으로 전개되어 제법 많은 토지를 팔아서 돈으로 합의를 본 기억도 있었습니다. 그 대가로 집에서 쫓겨나서 한 겨울에 일주일 정도를 짚단 속에서 생활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근데 항상 사건이 일어날 때는 **가 내 옆에 있었고, 내가 힘들 때는 나를 도와주었습니다. **는 내 그림자와 같은 아이였었고, 나도 그 아이 못지않게 끔찍이 그를 챙겨주었습니다. 그런 그가 오늘은 같이 꿀밤을 주우러 가자고 합니다.
  “그럴까? 어디로 갈까?”
  “앞산으로 가 보자. 거기 꿀밤 많다 하더라.”
  “그라자!”
  나는 망태기를 등에 메고, **는 커다란 막대기를 들고 둘이서 앞산으로 향했습니다. 나무는 **가 잘 오르기 때문에 나는 밑에서 떨어지는 꿀밤을 줍고, **는 꿀밤나무 위에 올라가서 막대기로 꿀밤을 텁니다. 앞 산 중턱의 아름드리 꿀밤 나무를 선택해서 **가 잽싸게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야! 이제부터 턴다, 잘 주워래이!”
  “그래 알았다! 걱정마라!”
  “후두둑! 후두둑!”
  잘 익은 꿀밤들이 여기 저기 떨어집니다. 나는 신이 나서 정신없이  떨어진 꿀밤을 주워 모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야!”
  하는 외마디 소리와 함께
  “투욱!”
  하고 무언가 묵직한 소리를 내며 꿀밤나무 밑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황급히 뒤돌아 살펴보니 내 친구 **가 나무에서 떨어져 말도 못하고 몸을 비틀며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야! 너 왜 이러노?”
  “무슨 일이고?”
  “…….”
  **는 말도 못하고 괴로운 표정으로 몸만 뒤틀고 있었습니다. 그 때 주변에서 윙! 하는 말벌 소리가 들렸습니다. **는 놀라서 더욱 괴로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가만히 상황을 정리해보니 **가 꿀밤을 털다가 말벌에게 쏘인 것입니다. 머리에 쏘인 것 같은데 표시는 없고 붓지도 않았는데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습니다. 많이 아픈지 괴로운 얼굴 표정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어째꼬? 어째꼬……?’
  나는 겁도 나고 당장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똥마려운 개처럼 안전부절 못하다가 우선 **를 등에 업고 집으로 달렸습니다. 가파른 언덕길을 어떻게 내려왔는지 기억도 없습니다. 단지 얼굴 이곳저곳과 팔뚝 이곳저곳에 작은 나뭇가지에 긁히고 바위에 부딪히는 아픔을 느끼면서 한 걸음에 달려 **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 어무이요! **가 벌에 쏘였어요!, **가 벌에 쏘였다니까요...!”
  ** 어머니는 방안에서 홀치기를 하시다가 황급하게 마루로 달려 나오셨습니다. 내 친구 **는 얼굴이 상당히 부어있었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습니다. ** 어머니께서도 당황하신 나머지 부엌에서 찬 물을 한 바가지 가득 담아 오셔서 말릴 틈도 없이 내 친구 얼굴에 끼얹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 길로 내 친구 **는 영원히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초겨울의 차가운 날씨에 벌독이 오른 상태에서 찬 물에 의한 쇼크로 심장이 멈춰버린 것입니다. 당시 우리 동네는 너무나 시골이라 마을에 의원조차 없었고 사람이 다치기라도 하면 소를 타거나 경운기를 빌려서 20리(8킬로미터)도 넘는 읍내로 의원을 찾아가야 했었습니다.

내 친구 **는 변변한 치료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다시 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습니다. 무서웠습니다. 친구의 죽음이 무서웠고, 우리 아버지의 나에 대한 처분이 무서웠고, 내 친구 엄마가 무서웠습니다. 아무 말도 못하고 집으로 와서 이불을 덮어쓰고 울고만 있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어머니께서 이불 속에 묻어둔 밥을 내밀며 먹으라고 권하셨습니다. 


  “**는?”
  “죽었다.”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 뒤로 나에게 아무 말도 묻지도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 뒤로 나는 나쁜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멍하게 있거나 혼자 중얼거리는 시간도 많아졌습니다. 오히려 부모님과 동네사람들이 나를 걱정하고 불쌍하다는 눈으로 쳐다보았습니다. 한참의 세월이 지나고서야 나는 제 정신을 차린 것 같습니다.

부모보다 먼저 죽은 자식은 불효자식이라고 해서 아무도 보지 않는 저녁에 관을 짜지도 않고 시체를 단지에 넣어 지게에 지고 가까운 산에 묻는다고 어른들이 말씀하셨습니다. 이틀 뒤 초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부는 깜깜한 밤에 내 친구 **는 영원히 내 곁을 떠났습니다. 아침에 보니 내 친구가 떨어졌던 꿀밤나무 근처에 잔디도 입히지 않은 빨간 황토 흙으로 만들어진 조그만 묘가 새롭게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비석도 없었습니다. 부모보다 먼저 죽은 아이를 묻을 때는 그냥 단지에 넣어서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묻는다고 합니다.

그 때 사용하는 단지가 애물단지라고 어머니께서 알려주셨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앞질러 가는 것이 부모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이라고도 가르쳐주셨습니다. 얼마나 아프고 견디기 힘들 일인지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고도 말씀하시면서 어떻게든 조심하면서 사고치지 말고 살라고 타이르셨습니다. 말썽쟁이 아이를 애물단지라고 하는 이유를 그 때 첨으로 알았습니다. ‘아이고! 이 애물단지를 어떻게 하냐?’라고 저에게 자주 화내시던 아버지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뒤부터 나는  얼마 동안을 더 방황했지만 진심으로 모범적인 학생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가을이 깊어가고 온 산에 꿀밤이 뒹구는 계절이 되면 내 친구 **가 생각납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으니까 겨우 11살이었었는데……. 지금 나와는 다른 하늘 아래서 살고 있지만 아마도 잘 지내고 있겠지? 내 친구 **도 나를 한 번씩 생각해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