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양심 칼럼] 게미, 감칠맛 곰삭은 맛 천년향기의 맛

오양심 2023-01-27 (금) 11:54 1년전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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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양심/ 한글세계화운동연합 이사장

 

게미는 전라도 방언이다. 간이 잘 배어 있다는 뜻으로, 김치, 젓갈, 장류 등의 음식 맛이 깊거나 진해서 감칠맛이 나고 곰삭은 맛이 나는 천년향기의 맛을 말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게미는 음식과 사람과 말과 글을 포함한 조화를 말하기도 한다.


전라도 김치 맛은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다. 백번 듣는 것보다, 직접 먹어봐야 게미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묵은 김치를 맛본 사람은, 전라도 김치라는 말만 들어도 군침이 도는 현상을 느낄 수가 있다. 먹을 수록 당기는 맛, 살아서 숨 쉬는 감칠맛, 독특하다 못해 곰삭은 맛이 모든 신경을 사로잡는다.


한마디로 말해서 전라도 김치를 먹고 있으면 게미가 있어서 저절로 행복해진다. 전라도 묵은 김치를 먹고 있는 순간만큼은,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은,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는 것 같은 맛이 바로, 간이 잘 배어있어서 게미가 있는, 자자손손 내리사랑으로 천년을 이어온 전라도 김치 맛이다.


한창기(1936-1997)는 게미가 있는 사람이었다. 우리글 한글과 우리말 한국어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한국 언어를 통찰한 언어 학자였다. 19763뿌리 깊은 나무를 창간했다. 토박이 문화를 보급하기 위하여 창간한 월간잡지였다. 대장간이 철공소로 바뀌고, 책방이 서점으로 바뀌고, 청주가 정종이 되어버린, 현실이 안타까워서, 우리글 우리말이, 전통문화 규범에 치이고 외래상업 문화에 밀려서, 일본말과 외래어로 동화되어 가는 것을 넋 놓고 볼 수가 없어서, 토박이 민중문화에 물길을 터주기 위해 두 팔을 걷어붙였던 것이다.


잘사는 것은 넉넉한 살림뿐만이 아니라, 마음의 안정도 누리고 사는 것이겠습니다. 어제까지의 우리가 안정은 있었으되 가난했다면, 오늘의 우리는 물질가치로는 더 풍요롭지만 안정이 모자랍니다. , 우리가 누리거나 겪어온 변화는, 우리에게 없던 것을 가져다주고 우리에게 있던 것을 빼앗아 갈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잘사는 일은 헐벗음과 굶주림에서뿐만이 아니라, 억울함과 무서움에서도 벗어나는 일입니다. 안정을 지키면서 변화를 맞을 슬기를 주는 저력이 곧 문화입니다.”이 글은 한창기가 쓴 높고, 깊고, 품위 있고, 게미가 있는 뿌리 깊은 나무창간사이다.


그랬다. 한창기는 뿌리 깊은 나무를 창간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한국인의 주체적 문화의식을 일깨운 신선한 제호, 과감한 표지 디자인, 한글 가로쓰기, 글꼴의 혁신 등으로, 대중 교양잡지에 대한 통념을 무너뜨렸다. 선진국의 편집체제는 지향했지만, 어려운 한자말이나 외국에서 들어온 외래어는 쉽고 게미가 있는 토박이말로 바꿔 썼다. 아무리 외국 것이 좋아도 우리문화와 관련이 없으면 잡지에 싣지 않았다.


뿌리 깊은 나무1980년 신군부(전두환)에 의해 강제 폐간된 비운을 맞았다. 우리 것을 지나치게 강조한 이유, 포용성이 부족하다는 것이 폐간 이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뿌리 깊은 나무는 품격이 있고 게미가 있는 글이 실려 있는 잡지로, 21세기 문화강국인, 대한민국 출판역사의 천년향기가 되고 있다.


게미는, 감칠맛 곰삭은 맛 천년향기의 맛이다. 한창기는 우리말 우리글을 사랑한 게미 있는 사람, 대한민국 출판역사를 게미 나게 혁신한 사람이다. 전라도 김치는 게미가 있어서, 생각만 해도 혀에 군침이 돈다. 우리도 우리말 우리글을 사랑하는 사람,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사람, 만나고 싶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게미 있는 사람이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