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소개글쓰기> 그해 그날/ 이근배

오양심 2023-09-03 (일) 12:24 7개월전 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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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배/ 시인. 대한민국 예술원회장 

 

삼팔선이 터졌습니다

내가 큰 소리로 대답을 하자

와아

1천여 전교생의 웃음이 쏟아졌다.

1950626일 월요일 아침

조회시간 송산초등학교 운동장 교단에 오른

홍명선 교장선생은

어제 우리 나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 사람?”

하고 물었을 때 일제히 손을 든 학생 가운데

5학년 반장 줄에 서 있었던

나를 교장선생은 가리키셨고

나는 그렇게 대답했었다.

일요일 집안 어른들의 말씀 그대로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는데

어째서 웃음거리가 되었을까?

꼬박 예순 해가 된 지금에 와서도

내 머리 속의 그 해 그 날

삼팔선이 터진 날로만 새겨져 있는데

그러나 철없이 뜻 모르고 내질렀던

그 한마디가 내가 열 살이 되어서야

처음 한 집에서 살게 된

아버지를 자취도 모르게 앗아가고

어머니와 남겨진 삼남매를

모진 비바람의 거친 들판으로 내몰게 할 줄을

어림짐작이나 했었던가.

아니 이 땅을 이 땅의 사람들을

산과 들을 목숨을 송두리째

찢고 할퀴어간 그 해 그날은

아직도 시퍼렇게 눈을 뜨고 달려드는

바로 오늘이기도 한데

나는 돌아갈 수가 없다

교장선생이 내 이름을 불러주던

어머니 차린 아침 밥상을

아버지와 겸상으로 먹고 등교했던

삼팔선이 터졌습니다

무슨 좋은 일인 양 목청껏 대답했던

송산초등학교 조회시간

예순 해전 그날의 운동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