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소개글쓰기> 세상을 아도치고 있다

오양심 2023-09-03 (일) 12:20 7개월전 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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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양심/ 시인, 한글세계화운동연합 이사장

 

세 살 때였다.

나는 둠벙에 빠져서

개구리처럼 사지를 쭉 뻗은 채 물위에

둥둥 떠서 죽고 말았다어른들의 지혜로

잿속에 파묻혔다가 사흘 만에 겨우 되살아났다

 

그때부터 먹는 것이 시원치 않았다.

장종지에 담은 밥을 머리에 이고 대문

앞에 꾸그리고 앉아 새처럼 한 알씩 주워 먹었다.

피골이 상접한 나를 본 이웃들은 “하루에

밥을 아홉 번 먹은 가이네” 라고 놀렸다

 

기력이 부족한 나는 책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넋을 잃어갔다.

성냥팔이 소녀를 읽었을 때였다.

소녀가 엄동설한에 처마 밑에서

얼어 죽었을 때 내가 죽는 것 같았다

 

저 하늘에도 슬픔이

라는 책을 읽었을 때는

주인공의 삶이 팍팍하고

울퉁불퉁해서 그 애보다

내가 먼저 죽을 것 같았다

 

사춘기 때는 하루 세 번 무서웠다.

아슴푸레한 저녁에 땅거미가 올라올 때

굴뚝연기가 머리를 풀고 하늘로 올라갈 때

잠자리에 들 때였다나의 목숨 나의 사랑

나의 꿈이 송두리째 접힐 것 같아 아찔했다

 

꿈에 의해 꿈이

고사당하고 꿈에 의해

꿈이 궁지에 몰리는 메마른

세상에서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길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내가 이렇게 오래 살줄을 몰랐다

나랏말씀이 중국과 달라서

글자가 없었던 우리나라를 위해서

세종대왕님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까닭을 안

그날부터 한글세계화에 목숨을 바치게 될 줄을 몰랐다

 

"한글로 문맹을 퇴치하자"

"한글로 문화강국을 만들자"

나팔수가 되어 국경을 넘나들 줄을 몰랐다

한글로 경제대국을 만들기 위해

온 세상을 아도치고 다닐 줄을 정말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