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양심 수필] 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든 사람

오양심 2023-01-05 (목) 17:13 1년전 322  

유년시절 아버지가 가르쳐 주신 우리 집 가훈은 날로 새롭게 살자였다. 우체국에 다니신 아버지는 직장에서 돌아오면, 저녁밥상을 물리신 후, 깔깔하게 풀을 먹인 정갈한 흰 한복으로 갈아입으셨다.


호롱불 밑에 놓여있는, 앉은뱅이 책상에 앉은 아버지는, 날마다 글을 읽거나 쓰셨다. 삼남삼녀 육남매를 책상 앞에 빙 둘러앉혀 놓고, 사람이 갖추어야 하는 근본도리가 무엇인지, 속담, 풍자, 해학, 명언 등 오언시(다섯 글자로 된 시)의 중요한 부분을 발췌하여, 추구집을 친필로 엮어서 공부시켜 주셨다. 주자십회, 명심보감, 사자소학, 고사성어 등도 가르쳐 주셨다.


그 중에서도 반복해서 가르쳐 주신 고사성어(故事成語), 날이 갈수록 새로워져야 한다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었다. 또한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의,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끈기 있게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음을 비유하는 말의, ‘마부작침(磨斧作針)이었다.


아버지는 두 가지 고사성어를 자식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주기 위해, 아예 위채 큰방 문 위에 일신우일신을 큼지막하게 한글로 쓰고, 그 밑에 작은 글씨의 한문으로 日新又日新을 써 놓으셨다. 아래채 방 문 위에도 마부작침을 한글로 쓰고, 그 밑에 작은 글씨의 한문으로 磨斧作針을 써 놓으셨다.


아버지는 36년 동안을 하루에 30킬로씩 걸어 다니면서 편지를 배달하셨다. 험난한 산길 들길 물길을 넘나들면서, 문맹자에게는 편지를 읽고 써주셨다. 근검절약 정신이 몸에 배인 아버지는, 한해에 한마지기씩 논을 사든지 밭을 사든지 하셨다. 어머니가 머슴과 함께 농사를 지어서 거둔 수확은, 쌀 한 톨 보리 한 알도 내다 팔지 않으셨다. 상이군경, 야매치과, 박물장수, 악극단 등까지, 우리 집은 먹여주고 재워주는 집이었다.


세월이 흘러, 나는 1993년에 시인으로 등단했다. 1999년 연말에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두 번째 시집 서편제출판기념회를 열었다. 호주 교포이고, 로마 교황청 전속 사진작가이신 백남식 선생님이,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초청으로 백두산 금강산을 촬영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나는 그분과의 인연으로 흰옷을 입은 표지 모델이 되었고, ‘서편제는 우리나라 최초로 만든 컬러판 시화집이었다.


북한에서 사진을 촬영하던 백남식 선생님은, ‘서편제출판기념회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을 거쳐 일시 귀국을 했다. 그분의 초청으로 우리나라 예술의 대가들이 대거 참석을 했다. 하물며 김대중 대통령을 대신하여, 비서실장 김상현의 이름으로도 화환이 진열될 정도였으니, 신인 시인에 불과한 나는, 금의환향한 사람 못지않은 호사를 누렸다.


그때 서편제발문을 써주신, ‘이근배(39대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시인은, “오양심 시인의 시집 원고를 읽으면서 가장 아프게 다가온 것은 오 시인(詩人), 시를 쓰지 않고는 살아 갈 수 없는, 뜨거운 영혼을 가슴 속 깊이 뿌리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며, “시인이 될 수밖에 없는 자질을 타고난 오양심 시인은, 어쩌면 스스로의 선택이 아닌, 어떤 거역할 수 없는 힘에 의해서 시를 쓰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해 준다고 하셨다.


신산 앞바다에/ 파도로 밀려와/ 흰 거품으로 자지러질 때마다/ 나는 짐승처럼 꺽꺽이었다// 뭍의 길이 끝난 그날부터/ 남해에 뭍인 바다길/ 그 길을 몰라/ 갯가에 주저앉았다// 둘째 딸 시집도 못 보내고/ 만장 앞세워 혼자 떠나신/ 어머니의 상여 뒤에/ 바다는 그저 비어있었다// 이제 그 바다/ 어머니의 길이 되어/ 밤이면 내게 와서/ 파도로 부서진다어머니서편제중에서 골라 낭송도 하셨다.


이어서 이근배 시인은 오양심은 한 세계를 향하여 줄기차게 치닫고 있다, “그의 몸속에는 이 나라 여인들이 오랫동안 가슴에 품어온 정한(情恨), 언어의 빛깔로 타오르며 핏빛을 띄고 있다면서, “어머니를 세상에 내 놓아 가슴을 울릴 수 있는 힘은 값지다, “어머니의 사랑과 이별의 아픔을, 잘 닦여진 모국어의 운율로 빚어내는 오양심 시인은 타고난 시인, 축복받은 시인, 천상에서 들려오는 영혼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시인이다고 추겨 세우면서 축사를 하셨다.


못난 이 애비까지 단상에 세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면에 부족한 제 여식의 출판기념회에 오신 것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아직은 여물지 않은 제 여식의 글이 날로 새로워졌으면 좋겠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글 한줄 써서, 이 자리를 빛내주신 여러분께 빚을 갚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걸음걸음을 일일이 배웅하지 못한 무례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하고 촌로인 아버지는 출판기념회에서 마지막 답례 인사를 했다.


그랬다. 우편배달부이기 이전에 아버지는 육이오 참전용사였다. 살아생전 보훈정신과 시대정신, 홍익인간 정신으로 사셨다. 나약하게 키워놓은 나를 늘 안타깝게 여기면서도, 참고 견디면서 노력하다보면, 반드시 행복한 날은 오고야 만다고, 어깨를 다독이며 힘을 보태 주셨다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드는 심정으로글 한줄 써서 후대에 남기기를 간절하게 바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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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2월 13일 오후, 오양심 시인이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詩 서편제출판기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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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12월 13일 오후, 오삼식(오양심 시인의 아버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서편제' 출판기념회에서 답례 인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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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삼식(오양심 시인의 아버지), 친필로 엮은 추구집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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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삼식(오양심 시인의 아버지), 친필로 엮은 추구집2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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