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서 나를 찾는다] 절대적인 시간을 살고 있다/ 구말모

오양심 2018-10-11 (목) 11:40 5년전 1053  

 

일본 동경에서
혈액투석을 받고 있다
어쩔 수 없이 하루에 4시간씩
주 3회 열 두 시간을 받고 있다
 
혈액투석을 받는 동안
재일동포가 된
나에 대하여
내 조국 대한민국에 대하여

언제 누가 독립을 해 준다고 해서
독립선언문을 썼던 것이냐
독립을 해야겠기에 민족 대표 33인이
전국에 배포하고 낭독을 한 것이다

언제 누가 통일을 시켜 준다고
통일 선언문을 쓰려고 했던 것이냐
지금 우리처럼 통일을 해야겠기에
통일 선언문을 쓰려고 했던 것이다

라고 말했던
독립운동가 도산(島山) 안창호에 대하여
역사학자 노산(鷺山) 이은상에 대해서도
모국어에 대해서도 골똘하게 생각하고 있다

혈액투석을 받지 않은 시간에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지금은 태평양 유골 사진 밑에 한국어를
일본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주사바늘을 꽂고 있을 때는
조국을 생각할 수 있어서 좋고
주사바늘을 꽂지 않을 때는
조국을 위해 행동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내 생애 가장 기뻤던 날은
지난 이천일십삼년 십이월
내 나라 서울 신촌 거구장에서
‘이산 아리랑’ 출판기념회를 열었을 때였다.
  
그때 나는
여러 지인들 앞에서
남북통일과 한일관계 개선 등의 업적으로
십년 후 그 장소에서 다시 만날 것을 호언장담했다
 
죄인도 아니면서
간첩누명을 쓴 채 반세기동안이나
반신불수가 된 나는 그날의 공약을 위해
병실 안 밖에서 절대적인 시간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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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말모(재일교포)/ 한글세계화운동연합 일본 회장이다>

<新山(신산) 오양심/ 시인. 前건국대학교 통합논술 주임교수>

짐 크로스(1943년 1, 10~1973년 9, 20)는 가수겸 작곡가이다. 밀라노바 대학에 재학 시절, 교내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포크 뮤직에 심취하여, 본격적으로 노래를 시작했다.

“시간을 병 속에 모아 둘 수 있다면/ 내가 먼저 하고 싶은 것은 당신과 함께 지낼 시간을 영원토록 모아두는 것이랍니다/ 세월을 영원히 알 수 있다면/ 한 마디의 말이 사실로 나타난다면 하루하루를 보물과 같이 모아서 당신과 함께 보내겠습니다(~생략)”는 ‘병속에 갇힌 시간’이라는 노래이다. 

짐 크로스가 사망한 후,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빌보드 정상을 차지하여 현재까지, 팝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깊은 사색에 잠기게 한다.

황진이는, 짐 크로스보다 500년 전에 태어난 조선의 명기였다. 15세 경에 이웃 총각이 자신을 연모하다 병으로 죽자 서둘러서 기계(妓界)에 투신했다. 용모가 출중하고, 뛰어난 총명과 민감한 예술적 재능을 갖춘 황진이는 서사화에 능했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배어 내어/ 춘풍(春風)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라는 황진이가 남녀 간의 사랑과 그리움을 솔직하고 대담하게 표현하여 쓴 시조를, 후대사람들이 절창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삶은 자신에게 주어진 절대적인 시간이다. 짐크로스의 노래도 황진이의 시조도, 구말모의 현재 처해진 상황도 시간의 한계를 돌파하려는 인간의 욕구와 맞닿아 있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해서는 안 되는 일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윤리 규범이 있다. 이상적인 도덕 사회를 구현하려면 보편타당한 또한 절대적인 행위 법칙이 있어야 한다.

재일교포 구말모의 시에서처럼, 누구나 이 세상을 살아가자면 우여곡절이 많다. 죄인도 아니면서, 역사의 희생양이 되어, 반세기동안 간첩누명을 쓰기도 한다. 반신불수가 되어 혈액을 투석하고 있는 구말모의 절대적인 시간이 빨리 회복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