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을 읽는다] 그림은 마음에 남아/ 김수정

이태호 2018-10-06 (토) 10:04 5년전 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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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8/ 선택된 이들의 슬픔이다 백석 시인의 이름은 그림 같다. 수능문제집을 풀면서 <여승>을 읽었다.

토속적인 시어에서 생경한 말맛이 좋았고, 한편의 시가 담은 이야기는 머릿속에 정겨운 이미지를 그렸다. 백석과 자야의 이야기에 반하면서 더욱 그의 시에 빠져 들었다”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平安道)의 어느 산(山) 깊은 금점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 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十年)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백석 시집/ 사슴 중에서 '여승'>

<거산(巨山) 이태호/ 시인>

백석의 <여승>은 토속적인 시어를 즐겨 다룸으로써 일제강점기에 모국어를 지킨 백석(白石)의 시이다. 백석의 첫 시집 <사슴,1936)에 수록되어 있다.

<여승>은 1930년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쓴 시이다. 한 여승의 비극적인 인생역정을 통해 일제의 식민지 수탈로 인해 삶의 터전을 상실한 채, 가족공동체마저 해체되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일제강점기라는 어두운 현실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던 민중의 고달픈 삶을 고발한 내용이다. 시인의 눈에 비친 여승은 비록 불교에 귀의했으나 현실적 고뇌에서 벗어나지 못한 서글픈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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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숙 作/ 외줄타기>

<그림은 마음에 남아>를 쓴 김수정은, 시인은 선택된 슬픈 사람이라고 적고 있다. 백석 이름이 그림 같다고 적고 있다. 시를 쓴 시인에게도 시인의 이름 속에서 그림을 발견한 작가에게도, 여승이 된 여인의 삶에도, 비극적인 민족사가 깃들어 있다.

시인은 그 비극을 가슴 깊이 갈무리해서 한 편의 시로 승화시켰고, <여승>이라는 시를 읽고 시에 빠져든 김수정 작가도  한권의 책으로 승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