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쓴 글] 5학년때 담임 선생님 / 이훈우

이훈우 2018-10-05 (금) 17:54 5년전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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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에 벚꽃을 보며> 

일본 동경 한국학교이다. 아이들도 선생님도 모두 떠난 교정에서 창문 너머 흩날리는 벚꽃을 바라보고 있다. 봄비와 섞여서 떨어지는 벚꽃을 보고 있으니 오늘따라 기분이 미묘하다.

새 학기가 시작된 이맘때쯤이면 아니다. 떨어지는 꽃잎처럼 분주한 학교생활이 시작되는 이맘때 쯤때면, 생각나는 선생님이 한 분 계신다. 5학년 때 나의 담임 선생님이시다. 선생님은 성격이 불같이 뜨겁고 괴팍했다. 5학년을 마칠 때까지 두려운 마음에 감히 선생님의 눈을 한 번도 정면으로 쳐다보지를 못했었다. 지금에야 생각하니 그 선생님 덕분에 배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1970년 초의 일이었다. 시골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피아노를 그 때 배웠다. 그림 실력을 한 단계 높이게 된 것도 그 선생님 덕분이었다. 불조심이나 반공을 주제로 한 웅변대회 등에도 빠짐없이 출전을 했다. 그뿐 만이 아니었다. 고전 읽기 대회, 스카우트 기능 경진 대회, 전국 핸드볼 대회 등의 많은 대회에 출전했다. 선생님 덕분에 대회마다 최고상을 휩쓸었다. 공부도 잘 해서 도내 일제고사에서 1등상을 타기도 했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에 1년에 한두 번은 찾아뵈어야 하는데 사람노릇을 못하고 있다.

나는 그때까지 선생님은 화장실을 가시지 않는 줄 알았다. 요즘은 학교 화장실을 교사와 학생이 같이 쓰기도 하지만 당시는 교사 화장실은 학생들이 볼 수 없는 곳에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선생님이 화장실 가시는 모습을 5학년이 될 때까지 한 번도 볼 수가 없었다. 선생님은 ‘이슬’만 먹고 사시는 ‘신선’인줄 알았다. 선생님과 같이 길을 걸을 때는 행여 그림자라도 밟을까봐 노심초사(勞心焦思)했다.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6월 어느 날이었다.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자습을 시키시고는 교실문을 열고 어디론가 나가셨다. 어련히 앞 논의 ‘물고’를 보러 가셨겠지 지레짐작하고 평소와 같이 공부에만 집중했다. 당시 우리 선생님은 작은 규모지만 벼농사도 짓고 계셨다. 늘 바쁜 선생님이신지라, 우리는 스스로 알아서 자기 공부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떠든다거나 돌아다니면 불호령이 떨어지니까…….

그때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다. 선생님도 안 계시고, 내가 반장인터라 조용히 화장실에 갔다. 시골 학교의 화장실은 모두가 ‘푸세식’이고 대변보는 옆에 소변보는 곳이 따로 만들어져 있는데, 시멘트로 칸막이도 없이 홈만 길게 파 놓고 턱 위에서 공동으로 볼 일을 보는 식이었다.

대변보는 곳에는 사람이 안에 없을 때는 냄새 때문에 보통 문을 열어놓는다. 근데, 소변을 보고 나오는데 대변보는 한 곳의 문이 닫혀있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살짝 잡아당겼더니 신기하게도 자동으로 문이 다시 닫히는 것이 아닌가! 이번에는 조금 더 세게 당겨보았지만 마찬가지로 또 다시 자동으로 문이 닫히는 것이었다.

너무나 신기해서 교실로 돌아와 친구 네 다섯을 모아서 다시 화장실로 갔다. 아무래도 화장실 안에 뭔가 있을 것 같은 두려움 반, 호기심 반에 모두들 조심조심 ‘새끼줄’을 화장실 문고리에 묶어서 ‘하나, 둘, 셋!’ 신호와 함께 힘껏 잡아당겼다.

아뿔싸…!
문이 확 열리면서 무엇인가 땅으로 굴러 떨어졌다. 우리 선생님께서 큰일을 보고 계신 그대로 쓰러진 것이었다. 한 손에는 꾸깃꾸깃 구겨진 종이까지 들고 있었으니 하는 말이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교실로 돌아와 가쁜 숨을 헐떡이며 국어책을 읽는 체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비에 젖은 머리에서는 하얀 김이 솟아나며, 한 방울 두 방울 빗물이 땀과 뒤섞여 책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정적이 흘렀다. 불안, 초조, 공포, 긴장 그리고 몇 분인가의 시간이 흐른 뒤, ‘드르륵!’ 교실 문이 열리며 선생님이 들어섰다. 그 순간 가슴 철렁이던 공포감은 지금 생각해도 몸서리쳐진다. 그 일이 있은 뒤로 선생님도 화장실을 가신다는 사실을 알았다.

공포의 화장실 사건으로 실망했던 선생님의 모습이, 비내리는 이봄에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온 가슴을 적셔준다.


<일본 동경한국학교 교감선생님, 한글세계화운동연합 일본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