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 읽는 편지] 즐거운 편지/ 황동규

김인수 2018-10-02 (화) 18:21 5년전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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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오는 날에>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인산(人山)편지/ 김인수 시인. 육군훈련소 참모장 준장>
다들 그런 경험이 한 번 쯤은 있으시죠? 자다가 갑자기 눈이 떠진 기억 말입니다. 제게는 중학교 시절의 어느 한 순간이 떠오릅니다. 일요일 오후에 낮잠을 자다가 갑자기 눈을 떠 학교에 간다고 부랴부랴 가방을 챙겼습니다. 오후 8시를 다음 날 오전 8시로 착각했던 것입니다. 그런 저를 보고 엄마는 웃으셨습니다. 엄마가 보시기엔 얘가 자다가 갑자기 왜 그러는지, 아직 잠이 덜 깨서 그러는지 재미있기도 하셨을 겁니다.

밤을 새울 작정으로 벼락치기 시험공부를 하는 도중 책상 위에 엎드려 졸다가 갑자기 깨어난 일, 그것도 한 두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있었습니다. 눈을 떠 보니 학교에 갈 시간이라 낭패를 겪기도 했고, 또 때로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혹시 저만 그런 건 아니겠죠?

어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함께 근무하는 전우들과 식사를 하면서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집에 들어와 씻고 정리를 한 다음에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손에 집어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나이가 들어서는 좀처럼 그런 일이 없는데 어제는 다소 피곤했던 모양입니다.

자다가 번쩍 눈이 떠졌습니다. 제일 먼저 시계를 보았습니다. 새벽 2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카톡을 보니 몇 몇 소식들이 와 있습니다. 전화를 하거나 답장을 했었어야 했는데 이미 지나버렸습니다. 그렇다고 그 새벽에 할 수도 없으니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테라스 창문을 열고 밖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새벽에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제법 굵은 함박눈입니다. 한참 동안이나 하염없이 밖을 바라보았습니다. 굳이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그 눈을 맞지 않아도 충분히 눈 내리는 겨울밤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문득, 시 한 편이 떠올랐습니다. 눈이 내리는 날에는 생각이 나는 시입니다. 입으로 조용히 낭송해 봅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이고, 외워서 낭송할 수 있는 시,  그 시가 바로 그 유명한 황동규 시인님의 '즐거운 편지'라는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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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黃東奎, 1938~ )는 시인이다. 1938년 4월 9일 평안남도 영유군 숙천에서 태어난다. 그의 아버지가 소설가 황순원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해방 이후 월남했고 한국전쟁 때는 대구와 부산에서 피난살이를 경험했다. 유명한 문인을 아버지로 둔 덕에 좋은 점도 많았지만, 늘 그분의 명성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그분과 다르기 위해 노력했다. 의대나 법대를 진학하기를 희망하신 부모님과는 달리, 문학이 좋았던 시인은 제대로 된 세계문학을 접해야겠다는 생각에 영문과로 진학해 영문학의 참맛을 깨우치게 된다.

고교시절 쓴 ‘즐거운 편지’로 대학교 2학년 때 미당 서정주 시인의 추천으로 문단에 등단, 이후 한국 서정시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우뚝 섰다. 시는 시인과 시적 자아 사이의 대화라고 생각하여 시를 쓴다는 표현 대신 시와 만난다고 말하는 시인. 적지 않은 나이에도 왕성한 창작욕으로 3, 4년에 한 권씩 시집을 내는 그는 글을 쓰게 만드는 원동력을 호기심에서 찾는다.

창조를 이끄는 호기심을 줄이지 않는 시인, 문학의 원천을 삶 그 자체에서 찾는 시인의 바람은 문인으로서 평생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세계 제패의 야욕을 품고 광분하던 일제의 수탈정책과 우리말과 글에 대한 말살정책이 극성을 부리던 시기에 황동규는 태어난다. 영유군 숙천에서 태어나지만 젖먹이 적부터 남한으로 올 때까지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평양에서 40리 가량 떨어진 대동군 재경리면이다. 그가 재경국민학교에 들어가서 맞은 1학년 여름 방학 때 우리나라는 일제로부터 해방된다.

<인산편지 https://blog.naver.com/kma4488/2212075566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