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우 수필] 흑백텔레비전 이야기 ⑮

이훈우 2020-09-01 (화) 06:54 3년전 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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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훈우/ 일본동경한국학교 교감

한글세계화운동연합 일본 본부장

 

, 오늘 전우 하는 날 아이가?’

전우 하는 날 맞는데, 너 돈 있나?’

 

우리 동네에는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왔고(1970년대 중반) 마을에는 이장님 댁과 만화방에 흑백텔레비전이 있었습니다.

 

이장님 댁에는 추운 겨울이 아니면, 매일 밤 마당에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텔레비전을 보지만 주로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여로라는 드라마를 봤습니다. 아이들은 만화방으로 가서 텔레비전을 보는데 10원씩의 시청료를 받았습니다.

 

당시 아이들에게는 나시찬씨가 주연하는 전우라는 전쟁 드라마가 관심사였고 학교에서 배운 반공 교육과 함께 공산당을 물리치는 국군 소대장인 나시찬씨는 그야말로 영웅이었습니다. 일일 라디오 방송인 태권 소년마루치태권 소녀 아라치가 끝나면 우리는 모두 돈 10원씩을 구해서 만화방으로 달려가곤 했습니다.

 

히야, 나도 같이 가면 안 되나?’

돈이 10원뿐이라 안 돼. 넌 집에 있어.’

 

두 살 밑의 동생은 같이 가려고 떼를 쓰지만 10원이 없어 떼어 놓고 혼자 나섰습니다. 동생은 울면서 뒤 쫒아왔지만 모른 체 무시하고 혼자서 만화방을 들어섭니다. 먼저 온 동네 아이들 십 여 명이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아있었습니다.

 

만화방은 우리 동네에서 유일한 가게로 학용품과 과자도 함께 판매하는 오래 된 잡화점입니다. 마루 주변으로 낡은 책꽂이가 둘러져 있고 손 떼 묻은 만화가 여러 권 꽂혀있습니다. 옆에는 간단한 문구와 과자 그리고 음료수가 진열되어 있고 그 중앙에 화면은 작지만 멋있는 나무로 커다랗게 짜진 박스 안에 흑백텔레비전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당시는 전기도 시간을 정해서 들어왔지만 텔레비전 방송도 오후 5시부터 밤 12시까지만 했었습니다. 처음과 끝에는 애국가가 흘러나왔고 대한뉴스라는 이름으로 나라 소식과 대통령의 동정을 많이 방송했습니다. 마을에서도 5시면 이장님 댁에서 태극기 하강식을 위한 의식곡을 내보냈습니다. 모두가 태극기가 있을 것 같은 쪽이나 노래가 나오는 쪽을 향해서 애국가가 끝날 때까지 부동자세로 서 있어야했습니다.

 

드디어 전우가 시작되었고, 돈을 내고 만화를 보던 아이들도 모두 드라마에 빠져들었습니다. 국군의 멋진 활약상이 나올 때면 모두를 만세를 부르면 손뼉을 치곤했습니다. 한참을 정신없이 드라마에 몰입하고 있는데 만화방 가게 창문 너머로 눈물로 범벅이 된 동생의 모습이 어른거렸습니다.

 

눈이 마주친 나는 빨리 집에 돌아가라고 인상을 쓰며 손으로 신호를 보냈지만 동생은 막무가내로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사정을 알아차린 만화방 주인이 오늘은 그냥 들어오라고 동생을 불러들였습니다. 동생에게 인상을 쓰면서 집에 가라고 소리를 지르면서도 내심으로는 만화방 주인이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빨리 고맙다고 말 안 하나? 빨리 말씀드리고 여게 앉아라.’

 

고개만 숙이고 있는 동생을 향해 만화방 아무머니는

 

괘안타, 히야 옆에 퍼뜩 앉아라.’

 

나는 내심으로 만화방 아주머니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우리의 영웅 나시찬씨의 이야기가 끝나면 우리는 10원 어치를 다 보았기 때문에 아쉽지만 만화방에서 나와야 했습니다. 어떤 날은 아쉬움을 견디지 못하고 편을 갈라서 동네를 무대로 밤늦게까지 드라마를 흉내 내며 전쟁놀이를 하다가 어른들께 혼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 때 우리 남자아이들은 라디오 방송인 마루치, 아라치와 텔레비전 드라마 전우를 이야기했고, 1년에 한두 번 들어오는 가설극장에서 본 박노식씨의 무술영화를 흉내 내면서 자랐습니다. 여자아이들과 아주머니들은 여로이야기로 열을 올리던.


난 지금도 하늘을 나는 것이 꿈입니다. 무공 수련으로 축지법도 쓰고 하늘 휙휙 날아다니는 꿈을 꾸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