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우, 가슴으로 쓴 글] ① 한겨울의 참새 사냥

이훈우 2020-03-24 (화) 06:03 4년전 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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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훈우/ 일본동경한국학교 교감, 한글세계화운동연합 일본본부장

 

12월 겨울밤은 시리게 춥고 깁니다.

두 살 위 6학년 형과 두 살 아래 2학년 동생, 그리고 나 이렇게 삼형제는 주섬주섬 두터운 솜옷을 껴입고 집을 나섭니다. 동생 손에는 검은색 비닐봉지 하나와 조금 굵은 철사가 들려져 있습니다.

 

휘이이잉!’

한겨울의 매서운 칼바람이 콧등을 할퀴고 지나갑니다.

! 여기 있을 것 같지 않아?”

어디? 어디? 내가 한 번 넣어볼게.”

형이 처마에 난 작은 구멍 속으로 처마 끝에 턱이 닿을 때까지 손을 뻗쳐 팔을 집어넣습니다.

! 잡힌다, 잡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잠시 후 형의 손에는 참새 한 마리가 잡혀 있습니다.

! 이번에는 내가 한 번 해 볼게.”

깊숙이 넣은 손끝에 참새 깃털의 따스함이 전해져 옵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모두 합쳐서 네 마리의 참새를 잡았습니다. 또 다른 구멍에서 한 마리, 또 다른 구멍에서도 두 마리.

 

어느새 시간은 밤 12시를 훌쩍 넘어 새벽을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우리 집 본채, 사랑채, 행랑채의 처마 밑 참새 구멍을 모두 뒤진 끝에 잡은 참새는 열 하고도 일곱 마리였습니다.

우리 삼 형제는 열일곱 마리의 참새로 요리를 시작했습니다. 담으로 빙 둘러쳐져 있어서 바람을 막아줄 뿐 아니라 어른들의 눈에도 잘 띄지 않는 행랑채 뒤에 우리 삼 형제들만의 비밀 장소가 있습니다. 미리 준비해 둔 장작으로 불을 지핀 후 참새구이를 시작했습니다. 요리는 막내 동생의 몫이었습니다. 추위를 녹이며 옹기종기 둘러앉아 불을 쬐다보면 어느새 참새 맛있는 냄새가 코를 자극합니다. 입안에는 벌써 군침이 가득합니다.

 

털이 타서 새까맣게 변하면 막대기로 두들겨서 재를 털어냅니다. 그러길 몇 번을 하고 나면 드디어 털이 다 없어지고 맛있게 구워진 참새구이가 나타납니다. 털이 없어진 참새의 모습은 생각보다 머리가 크고 목이 길며 몸통은 작습니다. 진짜로 고기 냄새를 맡으며 정성껏 몇 번을 돌려가며 조금 더 구우면 알맞게 익은 참새구이가 완성됩니다. 완전한 참새 한 마리 통구이입니다. 왕소금에 찍어서 한 입에 넣고 먹으면 여러 가지 묘한 맛을 차례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맛있지? 며칠 후에 또 하자?"

그렇게 일을 치르고 나면 어느새 시간은 벌써 새벽을 달리기 일쑤입니다.

지금도 겨울이면 어릴 때의 참새 사냥이 생각나곤 합니다. 그 때는 먹을 것이 없어서인지 뭐든지 먹을 수 있는 것이면 시도를 했었습니다. 생명의 소중함보다는 배고픔을 달래는 것이 우선이었고, 미물이라는 이름으로 참새들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만 생각을 했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인간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 대부분은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시절이야 어떻게 참새를 통채로 구워서 먹을 생각조차 할 수 있었겠습니까?

 

어릴 적에는 모든 것이 나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돌아가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높은 산에 올라가서 보이는 것이 세상이고, 그 중에서 인간이 제일 높은 주인이며, 눈에 보이는 것을 벗어나면 또 다른 세상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습니다.

 

우리 마을에는 내가 5학년이 되어서야 전기가 들어왔고, 6학년 때 경주로 수학여행을 가면서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그 때까지의 일을 글로 써 보고자 합니다.

기대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