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순 시] 춘향이 생각

정홍순 2018-11-13 (화) 10:22 5년전 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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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순/ 시인, 한세연 해외선교지도교수>

 

가을비 부슬거리는 육모정길

사람이 적었으면 아마

비를 거두지 않았을 것이다

춘향이 누운 자리에서 시작한

첩첩 쌓이는 길

육모정 주자가 발을 담근

때 이른 밥이나 먹고 가자

성에 차지 않으면 배만 고프다고

나물밥에 참기름을 떨군다

청국장에서 월매의 넉살과

향단이 고것이 버무린 도토리묵

말랑말랑 젓가락에서 떨어지고

성삼재 넘는 동안

안개가 자꾸 불러온다

매번 춘향이로 시작하고

춘향이로 끝나는 길

자전거 탄 씩씩한 여자의

알밴 장딴지

비늘 털며 소나무가 용천한다

열두 자 노고할미의 거웃이

상단에서 흘렀으니

저 또한 이 산의 측근

상상이 떨어지려면 죽어야 수인데

처박고 살아서 가라고

길목에 싸놓은 모랫더미 앞에서

브레이크를 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