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쓴 글]내 고향에서는 남녀노소가 오수를 즐긴다.

이훈우 2018-11-12 (월) 09:15 5년전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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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우/ 동경한국학교 교감이다. 한글세계화운동연합 일본 본부장이다>
 

 

유년시절이다. 더운 오후에는 온 동네가 쥐죽은 듯 조용하다. 어른들이고 아이들이고 여자고 남자고 모두 오수(오침, 낮잠)를 즐기기 때문이다. 사람들뿐만 아니라 가축들, 하다못해 야생 동물들까지도 오침을 즐긴다. 즐긴다는 표현보다는 더위에 지쳐 퍼졌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너무 더워서 아무 일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시원한 그늘을 찾아 낮잠을 청하는 것이다. 단 매미만은 맴맴 쉬지 않고 짝을 부른다.

 

모두가 잠든 시간이지만 나는 잠을 잘 자지 않는다. 강 건너 낙동강에 가서 조개(재첩)나 물고기를 잡기 때문이다. 낙동강의 폭은 300여 미터도 넘는다. 위수강의 폭도 만만찮게 넓다. 이 두 강이 합쳐지면서 중간에 여의도 같은 삼각주 모래사장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물이 흐르는 폭은 크고 모래밭은 넓어서 끝이 보이지 않는다.

 

모래밭은 햇볕에 달구어져서 뜨겁지만, 반짝이는 모래밭은 눈이 부시다. 보석을 뿌려놓은 듯이 넓은 지평선을 이룬다. 조금 걷다보면 발바닥의 무좀은 금방 없어진다. 발이 뜨거워서 동동 구르면서 모래밭의 한 가운데까지 뛰어가면, 신기루처럼 포플러 숲이 우거져 있다.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 같다. 나무 밑에 고여 있는 물은 달고 시원하다. 그대로 먹어도 아무 탈이 없다. 한 번도 배탈이 난 적이 없어서 하는 말이다.

 

중간에는 시원한 물이 고여 있고, 가장자리 쪽으로는 참외, 수박, 복숭아, 땅콩 등의 야생 채소와 과일이 자라고 있다. 물속에는 모래무지가 살고 있는데 모래 속에 몸을 숨기고 산다. 황새와 두루미는 얼마나 많은지 숫자를 헤아리기 어렵다. 주로 재첩이나 모래무지를 잡아먹기 위해 모여든다. 수천 마리가 하양색으로 모래밭을 뒤덮는다. 비상하는 모습은 장관이다.

 

물에서 놀다가, 황새 사냥도 하다가, 조개도 줍다가, 물고기도 잡다가 할 일이 많다. 뜨겁게 달구어진 모래밭을 얼마나 오랫동안 달릴 수 있나, 혼자서 내기도 한다. 혼자면 어때? 모든 것들이 친구인데......,

 

혼잣말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오후 3시 쯤 된다. 두 세 시간을 즐기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는 조개가 되든, 물고기가 되든 저녁 반찬거리는 마련해서 온다. 어떤 때는 황새를 잡아오기도 한다. 삶아먹으면 생고무보다 질길 때도 있다.

 

그때에야 동네 사람이나 동물들의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비로소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일터로 가야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미처 막걸리를 준비하지 못하고 일하러 나가실 때는, 5시쯤에 막걸리 한 되 받아서 일터로 가지고 오라고 일러주신다.

 

막걸리를 파는 도가에서 한 되를 사면 술 반, 물 반이다. 순 막걸리만 팔면 이익이 적기 때문에 독에다가 물을 많이 부어서 팔기 때문이다. 들로 가다보면 나 자신도 목이 말라 조금씩 막걸리를 마신다. 목적지에 도착해 보면 거의 반 이상의 막걸리가 비어져 있다. 너무 많이 비어졌을 때는 가장 시원한 물이 나오는 계곡의 물을 보충하기도 한다. 막걸리 양도 적어졌지만 물을 부으면 시원하다. 속내가 깊은 아버지는 다 알고 계시면서도 절대 의사표현을 하지 않으신다.

 

어떤 때는 막걸리를 사 가지고 논밭으로 나갈 때는 마구간에 있는 소도 함께 몰고 나간다. 소를 돌보는 일은 내가 할 일이다. 소 먹이가 되는 풀이 있는 곳에 고삐를 풀어놓고, 나는 소가 집에서 먹을 소꼴을 벤다. 낫을 이용해 순식간에 한 소쿠리를 채운다.

 

꼴 베는 일이 끝나면, 경치 좋은 곳을 골라 그림을 그린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생각하면서 우리 풍경을 배경으로 그림을 그린다. 하이디는 마음이 따뜻한 할아버지와 함께 알프스에서 행복하게 산다. 3년 뒤 몸이 약해 걸을 수 없는 부잣집 딸 클라라의 말 상대를 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로 간다. 하이디와 친구가 된 클라라는 점차 성격이 밝아진다. 하이디는 고향을 그리워하다가 몽유병에 걸린다. 결국 할아버지에게로 돌아온 하이디는 건강을 되찾게 되찾는다. 이후 하이디가 그리워 목동 피터의 도움으로 클라라가 찾아온다. 클라라는 하이디와 목동 피터의 도움으로 스스로 걸을 수 있게 된다는 내용을 몇 장의 그림으로 나누어서 그린다.

 

그림을 그리다가 내가 잠이 들면 우리 소는 영리하고 순해서 내 곁에서 기다린다. 내가 오래자면 집으로 가자고 음메 음메한다. 나는 소의 말을 알아듣고 잠에서 깨어난다. 나는 소에게 고삐로 말했고 소는 울음소리로 말했다. 간단한 나의 말이나 의도는 소가 먼저 알아차린다. 소가 풀을 뜯어먹고 배가 불러진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나에게 꼬리를 흔든다. 나를 등 위에 태우고 집으로 가겠다는 뜻이다. 소 등에 타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즐겁다.

 

나는 소설속의 주인공이 되어 거의 매일하고 소 등에 타고 있다. 어쩌다 중심을 잃으면 소의 발밑에 떨어져서 밟히고 만다. 하지만 소는 절대로 발에 힘을 주지 않는다. 위험한 일이 닥친 것을 먼저알고 얼른 발을 들어 다른 곳을 짚은 곳이다. 내가 철이 들고 우리 집이 농사를 그만 둘 때까지 함께 살았던 소의 이름은 누렁이다. 소와 헤어질 때는 많이 울었다.

 

오늘은 덥다. 이렇게 더운 날은 오침이라도 즐겨야 되는데, 나는 유년시절의 습관 때문인지, 별다른 일이 없어도 낮잠을 잘 즐기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