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수 칼럼] 순천만 가는 백일홍 길에서

오양심 2019-08-13 (화) 19:20 4년전 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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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수 시인>

 

 

순천만 국가정원 가는 길에 붉게 핀 백일홍 꽃이 한창이다.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여름 꽃이 고갈된 시점에서 백일동안 피고 지는 꽃, 배롱나무 꽃이다. 슬픈 전설과 이야기를 담고 있는 꽃이지만 절개와 끈기 그리고 즐거움도 함께 할 수 있는 역사적인 꽃이다.

 

떠나간 벗을 그리워하는 꽃말을 지니고 있는가 하면 부귀라는 또 다른 꽃말도 지니고 있어 선인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여름 꽃이 아니었을까 싶다. 예부터 가문 있는 집밖 정자나 묘지주변에서 피어나는 꽃으로 선비들이 좋아했다고 한다. 아마도 고결한 선비의 학문을 향한 열정이 머물 수 있는 절실한 대상이었지 않았나 싶다.   

 

조선시대 세조의 미움을 사고 죽어간 사육신의 한사람인 성삼문은 배롱나무를 사랑했다. 그는 자신의 인생철학과 닮은 붉은 꽃송이와 백일동안 피고지면서 일편단심 바라보는 절개 등을 사모했는지도 모른다.   

“지난 저녁 꽃 한 송이 떨어지고(昨夕一花衰) 오늘 아침에 한 송이 피어서(今朝一花開) 서로 일백일을 바라보니(相看一百日) 너를 대하여 좋게 한잔하리라(對爾好衡盃)” 이처럼 성삼문의 백일홍 사랑은 자신의 마음을 닮은 님 향한 일편단심과 백일동안 피고 지면서 바라보는 붉은 꽃빛이 아닐까 싶다.

 

수피역시 붉은 빛을 띠어 자미(紫薇)라고 부르기도 한다. 게다가 나무줄기까지 매끈해 가지를 만지면 나무가 간지럼을 타고, 나무를 잘 타는 원숭이도 오르기 힘이 든다는 설이 있다. 그래서인지, 간지럼나무와 원숭이나무라는 닉네임도 가졌다. 지난 목요일이었다. 필자는 사진작가인 서춘호 친구와 함께 백일홍 붉게 핀 순천만 국가정원을 깃 점으로 벌교까지의 국도를 달렸었다. 열대야로 심신이 지쳐있는 한더위는 금방 날아가 버렸다. 한여름의 푸르름 사이로 붉은 빛 꽃송이들이 오가는 길손을 반겼다. 도로양편에서 짙은 선홍빛 꽃 너울이 출렁이면서 님과 친구를 향한 그리움도 피어나기 시작했다.

 

순간, “백일홍 꽃 너울대는 순천만국가정원길”과 “순천만 가는 길에 붉게 핀 백일홍 정”이라는 글귀가 떠올랐다. 필자는 친구와 함께 국도변으로 발길을 옮겼다. 잠시잠깐이라도 너울거리는 붉은 꽃물결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뙤약볕에서 붉은 빛을 토하는 백일홍의 붉은 기는 물론 한여름과 맞서는 그 기백을 느꼈다. 아니다. 스쳐 지나가는 이별과 인연 등을 배웠었다.

 

친구에게 한 장의 사진촬영을 부탁하면서 백일홍도로변을 누볐던 즐거운 한 때였다. 외지인을 비롯한 관광객은 시간이 허락한다면 순천에서 벌교구간인 국도를 달려보는 것도 좋을 성 싶다. 순천만 국가정원을 찾는 여름관광객이라면 필히 국도변에 피고 지는 백일홍 길을 따라서 옛 선인들의 정서를 느껴봄이 어쩔까 싶다.

 

올 여름, 절과 정자를 찾는 길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중에서도 스님들의 이야기는 백일홍나무와 연관이 있었다. 스님들은 기거하던 절을 떠날 때, 간다는 말도 없이 바랑하나 걸머지고 홀연히 떠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말없이 가버린 벗(도반)을 생각하고 그리워했다. 아마도 적절하고 텅 빈 마음을 백일홍을 바라보면서 달랬지 않았나 싶다.

 

그렇다. “순천만 국가정원”에서 맺은 풋정 아닌 순정이 헤어질 때 느끼는 서운함과 쓸쓸함으로 번질 때는 백일홍 붉은 꽃빛으로 달래었다는 어느 관광객의 이야기가 새롭다. 그는 순천만국가정원에서 맺었던 그런저런 정들이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더욱이 아이들의 물놀이를 위해 “물빛축제”를 찾았던 그날, 아이의 친구와 부모들에게서 느낀 인정을 여름 꽃, 백일홍 붉은 빛으로  달랬다는 것이다.

 

순천만 국가정원 가는 국도변 길은 무더위에 지치고 짜증난 사람들 여름나기에 충분하다. 그곳은 붉게 핀 백일홍 꽃이 너울거리면서 지친 심신을 달래줄 것이다. 특히 여름 꽃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백일홍 꽃 피어나는 거리를 걸어보라, 좋은 추억거리가 될 것이다.

 

붉게 피는 네 꽃잎은 예쁘다 못해 슬프다

적갈색 네 피부는 미끄럽다 못해 섹시하다

 

바람기 있다는 속설로가정집에 머물 수 없는 너

정자주변 무덤가 떠 또는 너오뉴월 뙤약볕 마다않는 너

 

백일동안 붉게 피고지고 여름 지키는 

너의 붉은 넋성삼문이 사랑한 배롱나무다

 

송이마다 핏빛전설 묻어나고

가지마다 일편단심 님 그리며꽃잎마다 

붉은 사랑 배어나는여름 꽃으로 가로수 꽃으로

 

순천만 국가정원 찾는 길손들 붉은 기 불어넣고

붉은 정 주고받고 웃음으로 반기고 있다

 

(필자의 졸시 “백일홍 정”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