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수 칼럼]“낙안군면”의 행정명칭변경은 어떨까요?

관리자 2019-08-06 (화) 18:23 4년전 724  

 

 c60a87ec9a30560f2d6f61a89dbc9b02_1565083368_8893.png

<김용수 시인>

 

일본아베 언행에 분노가 치민다. 언제까지 이러한 치킨게임을 해야 할지, 불안하기만 하다. 약소국의 아픔과 설움이 밀려오는 지금, 반일감정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일본과 전쟁을 치른다면 지금이라도 총을 들고 전쟁터에 나가싸우겠다.”는 어느 노인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쪽발이의 근성으로 야만적인 언행을 서슴없이 저지르고 있는 그들에게는 무지막지한 쓰나미와 원폭이 답이 아닐까 싶다.

 

지금도 대한민국을 자기네들 마음대로 하려는 숨겨진 의도는 무엇일까? 우방국인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한다는 것은 또 다른 수법으로 아주 음흉한 정치술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도무지 알 수 없는 치졸한 섬나라일본의 속셈을 알 수가 없다.

 

이런 뜻에서 신길호 낙안면장의 낙안군면행전명칭변경 안이 새롭다. 그는 일제강점기의 잔재청산을 내세우며 일본산 불매운동은 물론 낙안면의 도로명과 행정명까지도 낙안군면에 따른 이름으로 새로 지정하자는 인식과 함께 확산운동을 펼치고 있다. 군이면 군, 면이면 면, 마을이면 마을, 도로면 도로의 이름을 낙안군면의 행정명칭으로 변경해서 부른다면 어떻겠는가에 중점을 두고 낙안운동 세계화를 위한 업무교류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역사를 거슬러보면 落雁樂安이라는 한자어를 놓고 보더라도 훌륭한 지명이다. 전자는 하늘을 날다가 땅에 내려앉는 기러기를 뜻하고 후자는 즐겁고 편안한 곳이라는 뜻이다. 후자의 지명을 사용하고 있는 낙안이름인 만큼 인심이 후하고 사람살기에는 즐거운 곳이다.

 

낙안면은 널다란 낙안들을 중심으로 존재산 ,제석산, 오봉산, 금전산, 고동산, 백이산으로 둘러싸여 아늑하면서도 풍요롭다.

 

그래서일까? 물 맑고 공기 맑고 인심 좋은 곳에는 사람들이 찾아들고 모여드는 것은 당연지사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을 도시라 칭하며, 행정명칭도 도시군락단위의 행정명칭을 붙이고 있는 성 싶다.

 

낙안의 역사를 살펴보면 특이한 점들이 많다. 마을과 면의 역사와는 달리 민족혼과 얼이 얽혀있는 굵직하고 짧은 역사들이 곳곳에 얽혀 있다. 임진왜란 당시의 이순신 장군과 연관된 사료도 그렇거니와 임경업장군의 업적 등 수많은 이야기들이 얽혀 있지만 특출하게 기록되어진 게 없다는 것이 아쉽다.

 

그 중에서도 마지막 낙안군수의 슬픈 이야기는 그대로 지나칠 수 없다. 상기해보고 오늘의 시점과 강성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그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낙안군 마지막군수의 이름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일제에 의해 폐군이 되는 것을 알고 있었다. 머지않아 일제가 군을 통치하게 될 것이라는 점도 미리 알고 있었다. 그는 19081015, 폐군되던 당시, 옥사에 갇혀있던 10여명의 죄수들을 모두 불러 모아 석방을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은 너희들이 죄가 없어 석방하는 것이 아니다. 머지않아 낙안군도 일제가 통치하게 될 터인데, 만약 지금 너희들을 석방하지 않으면 일제도 너희들을 죄인취급 할 것이다. 너희들은 조선의 죄인이지 일제의 죄인이 아니기에 석방하고자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마지막 낙안군수가 자신들에게 하는 말을 가슴깊이 새겼다. “지금까지는 남에게 피해를 입히고 살아왔지만 앞으로는 남에게 이로운 사람이 되서 그 빚을 갚으라.”고 했던 그 말을 가슴에 새기며 살았다고 한다.

 

이후 그들의 행방은 알 수 없었지만 2년 후 벌교장터에서 조선여자를 겁탈하려는 일본인을 때렸다는 이유로 일본헌병이 칼로 휘둘러 2명이 죽게 되었는데, 그 중 1명이 석방된 죄수였다고 전한다. 5년 후 낙민루 앞에서 일본인 지주를 살해했다고 총살을 당한 조선인도 석방된 죄수였다, 그리고 10년 후 독립만세운동을 벌일 때, 가장 앞장서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투옥된 7명중에 4명이 놀랍게도 낙안군이 폐군되던 날 석방됐던 죄수들이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임진왜란과 동학란 그리고 3.1독립운동과 소작운동 등 굵직한 역사적인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일제는 낙안군을 지금의 순천시와 보성군 고흥군으로 나누어버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전국최초의 민간인공모로 부임한 신길호 면장은 낙안군의 행정명칭을 낙안군면이라 칭하고 일제잔재청산과 일본산 불매운동 등 필요성을 확산시키고 있다. 특히 이번 아베의 언행으로 반일감정이 고조되고 있는 시점에서 면민들의 의지를 반영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