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수 칼럼] 순천이 낳은 마라토너 故남승룡 선수

이태호 2019-06-03 (월) 07:47 4년전 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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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수>

 

 

마라토너 남승룡! 육상선수 남승룡! 순천출신 남승룡!

그는 세계적인 마라토너였다. 식민지배의 아픔을 가슴에 새긴 채로 베를린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었다. 그는 대한민국 전라남도 순천출신이다. 금메달을 딴 손기정선수의 동료다.

 

어쩌면 그는 대한민국의 마라톤정신을 심어준 육상선수로써 순천의 이미지를 널리 알린 최초의 마라토너였는지 모른다. 1935년 일본메이지대학 2학년 당시, 일본건국기념 마라톤대회에 참가해서 자동차에 부딪혔는데도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차에 치여 피를 흘리면서도 다시 일어나 뛰었었던 그의 정신은 불굴의 투지정신이었으며, 순천의 얼이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손기정선수와 그는 조선인으로써 베를린 올림픽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었다.

대회규정상 3명만이 출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일본인 2, 조선인 2명 모두 4명의 선수가 후보로 선정돼 현지까지 동행했었다. 그 과정에서 조선인 1명을 떨어뜨려야만 했다. 손기정과 그는 현지훈련 중에 일본선수를 당당하게 따돌리고 그 대회에 출전, 1위와 3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순위를 뒤로하더라도 금메달을 땄던 손기정선수와 동메달을 땄던 그의 우정은 남달랐다. 마라토너를 떠나 동갑내기로써, 친구동료로써 아주 돈독한 사이였다. 빼앗긴 조국의 한을 품고 일장기를 달고 뛰어야 했던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끝없는 눈물이 흘렀다. 일장기를 가려보려고 바지를 몇 번이나 추켜 올려보았지만 허사였다. 가슴 벅찬 시상식에서는 일장기가 가슴을 억누르며 숨통까지 막혀왔다고 전한다. 가슴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지고 터질듯 한 처절한 아픔이 덮쳐 와도 그냥 그대로 견뎌야했다. 부끄러움과 울분 그리고 서글픔만이 번져 왔으며 환희의 순간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냥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그날의 영광과 나라 잃은 젊은 마라토너들의 서글픈 심정과 울분을 말이다. 해방 후, 일장기에 얽힌 사연과 베를린의 영광을 바로잡았지만 우리나라 마라톤 역사는 그 때부터 새롭게 써내려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흔히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마라토너는 손기정선수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은 기억해도 그와 같이 뛰면서 동메달을 차지한 남승룡 선수는 기억에서 멀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1등만이 존재하는 사회통념이 서글프다. 그 등수가 뭐라고 차에 치여 피를 흘리면서까지 1등을 해야 했던 불굴의 사나이, 남승룡! 그의 숨은 이야기는 무수한 지인들로부터 전해지고 있다. 1947년 보스톤 마라톤대회에서는 새까만 후배 서윤복의 페이스메이커를 마다않고 30대 중반의 나이로 42.195를 완주했다. 그는 불굴의 투지를 과시했으며, 보스톤 마라톤대회의 수훈갑이었다. 서윤복 선수의 우승을 도왔고 조선건아의 불굴의 투지는 물론 마라톤 강국을 또 다시 알렸다.

 

19121123일 전남 순천시 저전동에서 태어나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3위에 입상한 고 남승룡 선수, 그는 베를린 올림픽 이후에도 평생 후진 양성과 지역 체육 발전에 이바지하다 지난 2001220일 생을 마감했다.

 

그의 체육계업적은 수두룩하다. 하지만 베를린올림픽 3등이라는 서러운 등수 때문인지, 언제나 손기정선수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1996년 베를린올림픽 60주년을 맞아 후배체육인들이 마련한 금메달을 두 선수에게 나란히 선사하는 사실도 있었다.

 

10여 년 전이었다. 필자는 순천출신 남승룡 마라토너의 얼을 살려야 한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순천이 고향이고 출생지라서인지, 순천출신의 체육인과 예술인 그리고 문학인들의 자취를 더듬고자 하는 뜻에서 쓴 글이었다.

 

그런 연유에서일까? 그 이후로 남승룡 마라톤대회가 해마다 순천에서 개최되고 있다. 동천줄기를 따라 순천만으로 이어지는 코스는 가히 환상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수많은 마라토너들이 찾아오고 예비마라토너들까지 즐겨 찾는 코스라고 한다.

 

이런 추세를 느꼈는지, 시와 시민들은 뒤 늦게라도 남승룡 선수의 재조명을 서두르고 있다. 생가 복원부터 스토리북 제작과 테마길 조성 등을 통해 업적을 기리고, 나아가서는 원도심도 활성화하고 있는 것이다.

 

남승룡 선수! 그는 나라 잃은 슬픔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투지의 마라토너였다. 독일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와 함께 마라톤으로 민족의 자부심을 일깨웠었다. 고추장과 된장, 그리고 마늘장선(짱아찌)의 맛깔스런 밑반찬처럼 자랑스러운 순천정신이 빛나야 한다. 그의 얼과 업적이 바르게 조명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