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수 칼럼] 초심(初心)을 잃어가는 사람들

오양심 2019-05-01 (수) 08:54 4년전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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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수/ 시인> 

 

“초심불망(初心不忘)”, 초심을 잃지 말라는 사자성어가 떠오른다. 어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처음에 가진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초심을 잃고 변질된 삶을 살아간다.

특히 위정자를 비롯한 종교인과 교육인 그리고 언론인의 초심불망은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귀감이 되어야 한다. 즉, 국민의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위정자의 언행일치가 첫 번째이고, 국민의 올바른 양심을 심어서 선을 추구하는 종교인이 두 번째이고, 국민의 인성교육을 이끄는 교육자가 세 번째이고, 국민의 알권리와 정의로운 사회를 조성하는 언론인이 네 번째로 가정한다면  이들의 초심불망은 매우 크다 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행보는 초심을 잃어가고 있다.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종교인은 종교인대로 교육인은 교육인대로 언론인은 언론인대로 세월의 흐름 따라서 변질되고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처음마음 먹었던 대로 어떤 일을 해나갔다면 아무런 병폐가 없을 텐데, 다들 자신들의 영달을 위한 행보를 하고 있는지라 정치계, 종교계, 교육계, 언론계를 비롯한 사회전반이 갈팡질팡 갈지자를 걷고 있다.

모 종교인은 말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마음은 첫째는 초심(初心)이다. 둘째는 열심(熱心) 이며, 셋째는 뒷심이다. 그중에서도 초심이 중요하다. 초심이 있어야 열심도 생기고, 초심을 잃지 않을 때 뒷심도 따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초심을 평생 유지하기가 어찌 쉬운 일이랴! 어떤 분야에서든지, 정상(頂上)에 오른 사람들을 보라. 정상에 오르더니, 교만(驕慢)과 아집(我執) 게으름에 빠져서 사람들로부터 잊혀지고 추락(墜落) 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던가?

그렇다. 필자역시 그 종교인의 말에 동감의 뜻을 표한다. 자칫 오해의 소지가 생길까 봐 조심스럽게 두드려보지만 오늘날에 우리국회의원들의 모습과 성직자들의 언행, 그리고 상아탑과 언론사들의 촌극은 가관이 아닐 수 없다.

언제부터 우리사회는 사람보다 직함을 중요시 하는 사회로 돌변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현 사회제도에서 직위와 직분 그리고 지위가 차지하는 위상은 크다. 그 탓인지, 그에 따른 완장을 차려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한마디로 완장 값을 톡톡히 치르려는 사람들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정상에 오른 후에는 자신의 과거를 모른다. 개구리가 올챙이시절을 모르듯 초심을 잃어버리고 잘난 척, 아는 척, 위대한 척 등 척,척으로 인해 사회적 지탄을 받게 되는 사례들이 비일비재하다.

가끔 우리 마음은 옳지 않은 나쁜 생각들을 갖게 된다. 즉,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중상, 교만 등 어리석음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어리석음을 선으로 바꾸기 위해 종교를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더욱이 기독교는 나눔과 사랑의 종교가 아니었던가? 의아하고 의구심을 갖게 하는 대목이 즐비하다.

성경은 구구절절하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을 전하는 성직자들의 언행도 천차만별이다. 큰 교회일수록 더욱더 아이러니하고 성경을 볼모로 한 자기만의 설교로 성도들을 현혹시키고 있는가 하면 자신이 하나님인 듯 착각 속의 설교가 다반사다.

하늘나라를 차지하는 성인들은 우리 마음 안에 가득 차 있는 그런 나쁜 면들을 비워내는 정화 작업을 끊임없이 감행하면서 신앙의 열정이라는 초심을 지켜낸 사람들이다.    


   
중국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 701-762)이 상의산 노파(老婆) 가 큰 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드는 것을 보고 물었다.
 "이렇게 큰 도끼를 바위에 간다고, 바늘이 될 수 있습니까?"
상의산 노파는 서슴치 않고 대답했다.
 "그럼, 그렇고말고. 중간에 그만두지만 않는다면..."

그렇다. 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들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하랴! 그러나 바늘을 만들 수 있다는 처음 마음만 잃지 않는다면 반드시 바늘을 얻을 수 있다. 그만큼 초심이 필요하다. 이를 한자성어로 "초심불망 마부작침" (初心不忘 磨斧作針) 이라고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잊지 말고 평생 실천해야 할 덕목(德目) 이다. 초심을 잊지 않고 도끼라도 갈고 갈면 결국 바늘도 만든다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자기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하느님의 뜻이란 말을 남발할 때가 많다. 더욱이 일부 성직자들의 설교 중, 하나님의 뜻이란 말을 자주 사용한다. 특히 비극적인 사건에 직면할 때일수록 자신이 처리해야할 자명한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하느님의 뜻이란 말로 회피하기 위해서 온갖 행위를 다한다. 이것은 진정한 괴로움을 느끼고 싶지 않거나 혹은 자신이 선택한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지 않을 때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잘못된 일의 원인이 하느님의 탓으로 돌려져서 하느님의 상이 왜곡되는 현상이 생긴다는 것이다.

욥기에도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라고 했다. 우리속담에도 “시작이 반이다 (Well begun, half done)”라는 말이 있다. 만초유불가제(蔓草猶不可際) 이기 때문이다. 덩굴이 무성하게 되면 제거하기가 곤란하므로 모든 일을 시초에 처음부터 올바르게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초심불망”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교훈으로 삼아야할 인생덕목이 아닐까 싶다. 인생수업이 부족한 필자의 트라우마가 깊다. 믿고 믿었던 어느 한 성직자로부터 받은 실망감과 배신감은 또 다른 상처로 각인되고 있다.

그래서 일까? 다수의 사람들도 ‘원수를 사랑하라’는 기독교정신에서 멀어지고 있을 뿐 아니라 이기심이 팽배한 종교단체를 개탄하고 있다. 어쩌면 그들은 배려의 정과 나눔의 정을 갈구하면서 기독교를 숭상했는지도 모른다. 오직 사랑만이 우리들의 가슴을 녹이는 가마솥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