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규 칼럼] 사회변화의 속도에 일치하는 교육은?

관리자 2018-11-25 (일) 10:35 5년전 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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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규/ 오코리아뉴스 논설위원> 

 


‘교육 = 학교교육’이라는 관점에 서면 교육은 학교에 관계하는 현상에 한정된다. 사회의 권력이 학교교육에 의해 만들어졌던 20세기에서는 '교육 = 학교교육'이라는 전제가 우리 사회에서 지배적인 생각이었다. 그런데 사회변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21세기에서는  학교의 권위와 교육내용에 대해 좀 더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

요사이 텔레비전이나 휴대폰을 켜면 쏟아져 나오는 광고의 홍수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20세기 중반만 해도 광고나 상업행위에 노출되는 대상은 주로 성인이었으나 지금은 가정에 텔레비전이 있고 휴대폰을 가진 아이라면 연령에 상관없이 광고에 노출되는 세상이 됐다. 약품광고, 보험광고, 관광 상품 광고, 생활용품 광고, 주식투자, 금융상품 등 수많은 광고에 24시간 과잉 노출돼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터넷에 실시간으로 탑재되고 있는 엔터테인먼트에 관한 정보는 광고 이상으로 청소년들의 가치관과 태도,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멀티미디어의 아이덴티티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이러한 광고나 기사를 피하는 방법은 없는 시대가 돼 있다. 즉, 우리 사회가 미디어에 의한 쾌락지향주의 사회로 이행돼가고 있고 국민들은 태어나서 일생을 보내는 기간에 미디어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고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현명하게 보험 상품을 선택하고 가입하는 방법, 낭비 없이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방법, 계약서를 잘 보는 방법, 주식에 투자해 손해를 보지 않는 방법, 좋은 대출상품을 고르는 방법, 여행을 잘 하는 방법, 인터넷 쇼핑몰에서 충동적 구매를 하지 않는 방법 등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다.

사회생활에서 단체 활동에 유익하며 보람을 창조할 수 있는 악기 다루는 스킬, 스포츠 기술 등도 학교교육에 들어있지 않다. 이러한 스킬은 학교 밖에서 과외 수업을 받든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서 스스로 터득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여러 번의 시행착오와 손해를 통해 학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가가 마련한 교육과정에 이런 것들과 관련된 추상적인 내용이 일부 포함돼 있지만 자립에 관한 구체적인 방법론은 들어있지 않다.

지금 학교에서 가르치는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등의 교과는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필수과목이다. 고등학교 3학년에 치르는 수학능력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는 이러한 과목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대학을 갈 학생들은 그렇다고 치지만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올 학생들에게 있어 사회를 현명하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지식과 상식은 과연 무엇일까?

한 가지만 더 지적하면 학교교육의 권위에 관한 것이다. 미국, 영국 등 서구선진국에서는 학교에 취학하지 않고 가정에서 특별한 교육철학이나 종교적 방법으로 학습을 하는 홈스쿨링이 제도화돼 있다. 미국의 홈스쿨링 인구는 200만 명에 육박하고 있으며, 영국도 수만명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과 프랑스에도 홈스쿨링에 의해 학습을 하는 아이나 청소년들이 적지 않다. 최근에는 학교교육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학부모들의 학교 회피현상으로 그 숫자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반면 우리나라는 학교를 졸업하지 않으면 직업, 결혼, 사회활동에서 충분한 기회를 얻기가 불가능한 사회구조이다.

법규범뿐만 아니라 사회규범, 일반상식이 학교의 권위를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학교의 권위와 교육의 자유 사이에는 긴장관계가 만들어져 있다. 공교육제도가 가장 먼저 발달한 선진국의 교육에 대한 패러다임 변화를 냉철하게 직시할 경우 우리나라가 지금은 학교의 권위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때로는 과잉보호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가까운 미래에도 지금처럼 학교가 권위를 가질 수 있으며 제도가 학교의 권위를 보호해줄 것이라는 장담은 하기 어렵다.

학교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근대사회에서 학교가 ‘사회의 소우주’로서 인정받았던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교육에 관여하는 자들이 자기 성찰을 바탕으로 20세기라는 구식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새로운 패러다임의 거대한 물결을 거침없이 거슬러 나아가려는 태도야말로 시대의 변화 속도에 일치하는 교육이 되는 첫걸음이자 ‘21세기 교육의 코페르니쿠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