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양심 칼럼] 시와 음악을 만난 그들의 삶은 행복했을까?

오양심 2022-09-06 (화) 04:22 1년전 1876  

 

3cb4afb965fa1044a17429fe79d904f3_1662405689_2332.png
오양심 칼럼니스트

 

 

직감은 사람과 사람이 만났을 때 느껴지는 감각이다. 시를 만났을 때, 음악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직감이 맞아떨어져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된다면 날마다 행복할 것이다. 반면에 불행의 소용돌이에 휩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시와 음악을 만난 그들의 삶은 행복했을까?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다.

 

김소월은 진달래꽃으로 널리 알려진 시인이다. ‘진달래꽃은 꽃이 잎보다 먼저 핀 자연물이 아니라, 만남과 이별로 감정을 이입한 시인 자신이다. 척박한 땅에서 자란 진달래꽃은 강인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여리고 가냘프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피눈물이 고여 있을지언정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밝고 경쾌한 칠오조(七五調)정형률로 희망을 노래하고 있을 뿐이다.

 

시인은 진달래꽃의 붉디붉은 꽃잎마다 주근깨 뒤에 무슨 한()을 숨겨놓았을까? 인간의 삶은, ‘진달래꽃처럼 해마다 피고 지는 것이라고, 자연의 섭리에 빗대어서 시()로 가르쳐준다. 숙명은 지병처럼 반복되는 것이며, 운명도 영원한 것이 아니라고 가르쳐준다. 시인은 진달래꽃마지막 부분에서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겠다고 삶과 죽음을 초월한 단 한줄로, 읽는이들의 급소를 찔러 놓고, 33세에 단명했다.

 

에릭사티는 프랑스 작곡가이다. 드뷔시 라벨과 같은 동시대 거장들에게, 깊은 음악적 영향을 주었다. 장콕토, 피카소 등 당대의 최고 시인 또한 화가들과 어울리며, 미학운동을 선도했다. 그러다가 영혼이 자유로운 화가이자 그림모델이었던 수잔 발라동과,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얼마 못가서 수잔과 헤어졌다.

 

에릭시티는 나는 이 땅에 왜 왔을까? 즐기려고, 아니면 형벌로? 나는 태어나서 얼마 안 된 아이 때부터 내가 작곡한 음들을 흥얼거리고 노래를 불렀어라는 일기를 썼다. 첫사랑이면서 마지막 사랑인 수잔을 평생동안 그리워하며, 사랑보다 더 아름다운 난 널 원해라는 왈츠를 작곡했다.

 

우리는 에릭시티의 일기와 음악을 통해, 한 음악가의 가슴 절절한 고독과 외로움을 느낄 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널 원해는 담백하고 편안하고 따뜻하다. 짝사랑을 해본 사람만 아는, 직감이다.

 

아침에 이슬 맺힌 꽃잎처럼/ 저녁에 붉게 물든 황혼같이/ 그대의 고운 뺨에 입 맞추며/ 숲길 걸었네// 풀벌레 노래하는 정원에/ 장미꽃 향내 짙어 올 때에/ 그대의 고운 입술 입 맞추며/ 숲길 걸었네// 새벽의 안개가 대지를 덮을 때/ 맘속에 피어난 사랑의 열정/ 어둠을 가르는 찬란한 햇빛/ 내 맘에 빛난다//”는 캐롤라인 엘리스가 에드워드 엘가에게 보낸 사랑의 편지였다.

 

에드워드 엘가(Edward Elgar)는 영국의 작곡가이다. 9년 연상인 자신의 제자 캐롤라인 앨리스와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엘가는 가난한 평민이고, 앨리스는 귀족의 딸이라, 집안의 반대가 극심했다. 그해 여름, 앨리스는 사랑의 인사라는 시를 써서 엘가에게 보냈고, 그는 곡을 붙여 소품을 만들었다. 그때 엘가가 악보에 붙인 곡의 제목은 'Salut d'amour(사랑의 인사)'이고, 프랑스어로는 알도 치콜리니(Aldo Ciccolini)’였다.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는 옛말은 현실이 되었고, 두 사람은 백년가약을 맺었다.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엘가에게로 왔던 앨리스는, 헌신적으로 남편을 내조했다. 그녀는 엘가의 음악에 영감을 주는 뮤즈였을 뿐만 아니라, 작곡에 대한 비평가이기도 했다. 영국의 귀족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던 평민 출신의 작곡가 엘가는 내성적이어서, 때로는 대인기피증까지 있었다. 그때마다 앨리스는 남편을 돌봐주고 힘을 보태준, 아내이자 어머니가 되어 주었다. 엘가 또한 아내를 깊이 사랑하고 존경했다.

 

그 외에도 에드워드 엘가는 대중적인 인기와 명성을 가져다준 '위풍당당 행진곡'을 연주하면서부터 승승장구했다. '첼로 협주곡 E단조' 연주를 마치고 무대를 내려온 엘가는 아내와의 이별을 직감했다. 앨리스는 이내 세상을 떠났고, 힘을 잃은 엘가의 삶은 고독했다.

 

창조적인 천재성을 가진 사람들은 뜨거운 영혼을 가슴 속 깊숙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가슴에 피를 찍어서 숙명과 운명을 시로 적어놓은 김소월도, 한 여인을 짝사랑하면서 지문이 닳아지도록 건반을 누른 에릭시티도, 백년가약을 한 엘가도, 지상에 살면서 천상을 노래했다. 그들은 행복과 불행을 둘 다 껴안고 살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