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장서호 作​말갛다고 푸르다고 눈부시다고 신비롭다고? ​하늘이 고르고 골라 나랏말싸미 있는 그 위에서 순우리말로 빛을 쏟아 붓고 있으니 누군들 넋을 잃지 않고 배겨나겠느냐? 여기서는 겨울잠을 자던 강들이 깨어나서 우리말로 노래하고하늘을 나는 새들도 우리글로 노래하고 있다​한글을 만든 내가 죽어 불휘기픈나모가 되었다내가 죽어 샘이 깊은 물이 되었다 두 팔을 벌리고 여기에 서 있으면 온 세상이 보인다세계 70억 식구들도 한눈에 보인다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넓은 세상으로 나가서 문맹퇴치에 앞장서고 있는 한글로 국격을 높이고 있는 내리사…
 창 밑에는 매화가 몇 가지 피고창 앞에는 보름달이 둥글게 떴다.맑은 달빛 빈 등걸에 스미어 드니시든 꽃을 이어받아 피고 싶은가.   窓下數枝梅(창하수지매)窓前一輪月(창전일륜월)淸光入空査(청광입공사)似續殘花發(사속잔화발)<한시 梅落月盈>     ▲이광희 作   시인은 매화가 지는 아쉬움을 시로 달랜다. 창밖에 서 있는 매화나무 가지에 꽃이 피어 황홀함으로 날을 보낸다.   창 앞에는 고맙게도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뜬다. 환한 달빛…
    복의 근원을 찾아 진리의 빛을 찾아 한 육십여 년 높은 곳을 향해 달렸다. 행복의 통로가 되어 나눠주고 싶어서였다.   갈등과 방황은 친구가 되어주었고 노을이 질 때까지 한 솥밥을 먹었지만 영혼을 불 밝히는 길은 낙엽이 가르쳐 주었다.   가을이 되면 내가 나를 만날 수 있고 혼자서 외로워야 내면도 볼 수 있다고 아득히 낮은 곳에서 모국어로 말해주었다.      ▲이광희 作   복은 평안하고 기쁜 것이다. 성경에서는 …
    피어나는 꽃처럼 나는너처럼 많은 생각을 했고실바람이 불어 시원함으로우리는 외로워가비는 내리면 원망스럽게 손짓을 했었다눈빛은 서로 보이지 않게우리가 부르는 소리에창밖의 빗물 울음에꽃잎은 떨어진다고 하네!외롭다한구석의 아픔은그들만의 이름으로꽃처럼 우리는 사랑했었다.서성이는 빗물 그림자에꽃망울은 눈물의 흔적만 남기고나는 한마디 하고 싶었다꽃처럼 나는 외롭다. ▲이광희 作         시인은 외롭다고 꽃처럼 외롭다고 표현…
    엄동설한에 나무를 생각하고 있다. 그가 산속에서 살고 있다면 그 속에 들어가 매화꽃이 되고 싶다. 햇빛이 찾아오면 햇빛과 놀고 바람이 찾아오면 바람과 놀고폭설이 내리는 캄캄한 밤중에는 둘이 한방에서 한 이불을 덮고 싶다. 따스한 햇살이 아침을 열면그가 그리워했던 나의 이름만큼 내가 보고 싶었던 그의 이름만큼 가지마다 핏빛 꽃망울 피우고 싶다.      ▲이광희 作   시인은 나무와 꽃을 사람으로 의인화하고 있다. 꽃과 나무를 사물화하여 존재의 깊…
  진실의 문   진실의 문 앞에서현실은 힘없이 무너진다세상의 벽을 부수며진실은 문 너머에서무엇을 말하고 싶었던걸까왜 항상 닿지 않는 저 곳에서내 숨의 근원과 연결되어나를 어서 오라고 재촉만 하는걸까  착하고 아름답게만 살고 싶었어요. 혼자 놀고 삐치다가 신경을 곤두세워 가끔씩 나를 무너뜨릴 때가 있었어요.   문을 활짝 열고 자연으로 나가보았어요. 모든 것들이 비스듬하게 기대고 있었어요.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나 봐요.   콩 꽃은 담장에 기대어…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塔) 위에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구비구비 누구의 노래입니까.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
    나는 일어나 지금 갈거야, 이니스프리로 갈거야, 조그마한 오두막을 거기에 지을거야, 진흙과 나뭇가지로. 콩을 아홉 이랑 심고, 꿀벌도 한 통 칠거야, 그리고 벌소리 잉잉대는 숲에서 홀로 살거야.   나는 거기서 평화로울 거야, 왜냐면 평화는 천천히, 아침의 장막을 뚫고 귀뚜리 우는 곳으로 천천히 오니까. 거기는 한 밤은 항상 빛나고, 정오는 자주빛을 불타고, 저녁은 홍방울새 소리 가득하니까.   나는 일어나 지금 갈거야, 왜냐면 항상 밤낮으로 호수물이 나지막이 찰싹이는 소리가…
 상고대야! 네가 내안으로 걸어 들어온 때는 작년 십이월이다. 너를 본 순간 나는 사람이 아니었다.   새해를 맞자마자 다시 너를 찾아온 것은 언제 가버릴지 모를 네가 무척이나 보고 싶어서였다.   붙잡을 사이도 없이 가버린다고 해도 이제는 찾지 않으련다. 네가 내 곁에 있으면 꼬리가 아홉개 달린 짐승이 될까봐       ▲장서호 作   이 시는 1연에서 십이월에 상고대를 보러 갔다고 적고 있다. 상고대를 본 순간 자연의 신비에그…
 엄마라는 이름을 부르며 대문을 들어섰던 그때가 좋았다엄마라는 이름을 들으며 지지고 볶아댔던 그때가 좋았다.   내가 옛날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내가 너희를 얼마나 보고 싶어 하는지 몰라도 된다. 그것은 오직 나 혼자만의 것이니까   다만 인생의 해질녘에는 함께 있어서 외롭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  ▲이광희 作  허천병은 몹시라는 의미의 전라도 사투리이다. 시인이 허천병에 걸려있다는 제목으로 돌아가신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 자식을 보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
 그대를 사랑하는 고통을 나는도저히 견디지 못할 거예요걸으면서도 그대를 두려워해요그대 서 있는 그곳에서어둠이 시작되고그대가 나를 쳐다볼 때그 눈으로 어스름 밤이 다가와요오, 태양 속에 어두운 그림자를난 여태껏 본 적이 없어요그대를 사랑하는 고통을 나는도저히 견디지 못할 거예요 ▲이광희 作  사랑은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이고 힘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사랑을 에로스라고 했다. 육체적인 사랑에서 진리에 이르고자 하는 동경·충동을 포함한다. 아름다운 육체를 소유하고자 하는 사랑을 모든 육체의 미…
 [시와 그림이 있는 풍경] 한 편의 시/ 여운일 시. 이광희 사진   나에게 시(詩)는 기대는 곳이다. 하루라도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 비스듬히 기대고 서 있는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한 저 여린 생명들을 보라. 이 아침 일엽편주 시 한편은 나의 나침판이다.   망망대해 천지간에서 나를 받쳐준 시(詩)여!     ▲이광희 작품   나에게 시는 기대는 곳이라는 첫 줄의 이미지 때문에 이 시가 단박에 마음에 와 닿는다. 하루…
       회색빛 도시에서, 착하게만 산다고 한들, 이것은 인생이 아니다. 돌다리를 두드리고 건너는, 일들이 딱딱하고 편하지 않다. 바람에게 말한다. 나를 밀어 올려 달라고, 햇빛에게 말한다. 네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이곳에 머무는 동안에, 나는 새들과 어울려 나는 것을 배우고 싶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바다도 건너는, 끝내는 하늘을 날아오르는 비상을……,      ▲장서호 작품 ​​▲장서호 작품 ​​▲장서호 작품​&nb…
       사다리를 조심스레 하나하나 올라갔습니다.연륜(年輪)이 다 찬 꼭대기에서어머니 또 어디로 올라가야 합니까?(…)   속절없는 나의 곡예에 풋내기 애들의 손뼉이 울리고누군가(피에로)(피에로)하며 외치는 소리.   어머니어찌하여 당신은 나에게 날개를 주시는 걸잊으셨습니까?   - 김용호(1912~1973)   광대는 여러 가지가 있다. 판소리를 업으로 하는 사람, 탈놀이, 인형극을 하는 사람, 연극인 등을 모두 광대라고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