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그림이 있는 풍경] 흙칼과 책/ 정홍순 시. 이광희 그림

강지혜 2021-01-12 (화) 12:52 3년전 1405  


 

 

나는 돌상에서 무엇을 쥐었을까

생일 때마다 팥단자 먹으면서도

돌상 얘기는 듣지 못했다

아버지는 징용 끌려가기 싫어

흙칼 하나 들고 안면도

불탄개 어디쯤에서 황토 흙

주무르는 토수로 지냈다

아버지가 발라놓은 무너진 벽

땜질하는 나를 쳐다보며

누가 바른지 대강 알 수 있다는

말에 흙칼이 펄쩍 뛰었다

나는 아버지 돌상 얘기도 들은

기억이 없다

아버지는 흙칼 쥐고, 나는

책 쥐고 도망쳤을 뿐이다

하지만

누가 썼는지 대충 알 수 있다는

말투로 나는 늙지 못하고

흙벽에 황소라고 쓴 낙서에서

울고 있는

성난 소리만 밤마다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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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희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