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그림이 있는 풍경]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오동춘 산문시, 이광희 사진

관리자 2020-09-02 (수) 07:02 3년전 947

우리 아버지는 농부였습니다 흙사랑에 사셨습니다 새벽부터 거름을 져 냈습니다 달을 지고 들어오시는 마음은 항상 밝았습니다 띠엄바구 논 두마지기! 일본까지 가시어 석탄 판 품으로 샀습니다 땀을 동이동이 쏟아도 가난은 강물이었습니다 지게가 밥이었습니다 어깨가 뭉게 지도록 식구들 입을 짊어졌습니다

이집 저집 품 팔러 다녔습니다 그래도 쑥을 쪄 먹고 솔 껍질을 먹어야 했습니다 어깨는 날로 더 무거워졌습니다 지리산 산판나무도 져 날랐습니다 사철 이마에 구슬땀이 맺히고 등어리 흠뻑 젖었습니다 먼 산에서 하루 종일 해 온 나뭇짐을 장에 나가 팔았습니다 그래도 쌀독은 늘 비어 있었습니다

“새끼 서발은 쓸데 있어도 인간 백발은 쓸데 없어” 삶의 철학을 말하는 입에는 거짓이 없었습니다 짝짝 갈라놓은 장작처럼 곧은 마음씨였습니다 아침을 다 마치기 전에 배울 수 있는 한글조차 못 깨쳐 낫 놓고 ㄱ자도 몰랐습니다 그래도 거울 같은 시냇물에 씻은 마음 천사였습니다 배운 글 없고 익힌 기술 없어 대대로 물려받은 지게로 뼈 빠지게 한평생 벌어도 벌어도 오직 맑은 가난만이 벗이었니다

가슴 아픈 시름은 희뿌연 막걸리로 푸시고 구성진 민요로 잊어 가며 한평생 산 높고 물 맑고 인심 좋은 마천 산골에서 지게 인생만 사시다가 가셨습니다 가난과 진실만 아들에게 물려주고 늘 거름 쏟던 지리산 기슭의 밭 언덕에 외로이 홀로 주무십니다 산새 소리 물노래가 벗입니다

효됴 한번 제대로 못한 나는 국어 선생입니다 칠판에 우리 말 우리 글 우리 얼을 사랑하자 쓰고 외치는 홀소리 닿소리 선생입니다 쪽박을 차도 자식은 가르쳐야 한다는 진주 하씨 어머니의 교육정신으로 늦게나마 박사까지 따서 지금은 대학 칠판 앞에 섰습니다 이 대학 저 대학에 글 품팔이를 합니다

아버지가 남의 집 지게 품팔이를 해도 심으면 움 돋고 꽃 피어 열매 맺는 씨를 뿌렸듯이 나도 새싹들 가슴 밭에 짚신정신의 씨앗을 뿌립니다 참삶 뼈삶 빛삶의 씨앗을 깊이깊이 심어 줍니다 심은 대로 거두기 위해서입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입니다 나도 돈하고 거리가 멀게 살아갑니다 돈이 오다가도 날 보면 달아납니다 그래도 가난하지 않습니다 마음은 백만장자입니다 벼슬도 부럽지 않습니다 지렁이처럼 낮게 살아갑니다 고구마 넝쿨처럼 흙사랑의 고랑을 기어갑니다

마음속에서는 결코 꺼지지 않는 신념의 등불이 탑니다 “사람은 뼈 있게 살아가야 한다”는 어머니 가르침이 뼛속 깊이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십자가 길로 그저 기쁘게 살아갑니다 아버지 오문달님은 지게로 품팔아 살아 가셨고 아들 송골은 우리 한글로 품 팔고 살아갑니다

<오동춘/ 짚신문학회 회장, 한글세계화운동연합 자문위원장>

▲이광희 作/ 한글세계화운동연합 전속사진 작가

<참고>

한글세계화운동연합은 우리말 우리글을 사랑하는 단체입니다.

아래의 4가지 목표를 정해놓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글(한국어)을 세계 으뜸어로 만든다.

한글로 세계 문화강국을 만든다.

한글(한국어)로 지구촌 문맹을 퇴치한다.

한국 전통문화를 지구촌에 보급한다.

한글을 사랑하는 우리는 모두가 가족입니다. 만나지 못할 때는, 조상대대로 물려주신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 한글로 만납시다. 시, 수필, 일상생활의 단상 등, 글 보내주시면 실어드리겠습니다. 가슴을 터놓고 글로 공감하면서 웃고 울고 서로 사랑합시다. 날마다 건강하고 행복합시다. 기회를 놓치지 맙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