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양심, 개천절 특집> 단군은 신화가 아니고 실재 인물이다

관리자 2019-10-04 (금) 07:24 4년전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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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세계화운동연합 오양심 회장  

● 삼국사기에 첫 기록 
 
<일요주간 = 소정현 편집장> '우-리가 물 이라면 새암이-있고/우리가 나무라면 뿌리가 있다/ 이 나라 한아바님은 단군이시니/ 이 나라 한아바님은 단군이시니-생략’ 이는 정인보가 작사하고 김성태가 작곡을 한 개천절 노래이다.
 
오늘은 10월 3일 개천절이다. 개천절은 하늘이 처음 열린 날이라는 뜻이다. 기원전 2333년 우리 민족의 최초 국가인 고조선을 단군이 건국했음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국경일이다.
 
단군은 우리나라의 최초 국가인 고조선을 세운 첫 임금이다. 단군에 관한 우리나라의 첫 사서 기록은 ‘삼국유사’에 실려 있다. 삼국유사는 고려 충렬왕(1281∼1283년)때 보각국사 일연(1206∼89)이 신라·고구려·백제 3국의 유사를 모아적은 역사서이다.
 
‘삼국유사’의 체재는 권1에 왕력(王曆)으로 제1과 기이(紀異) 제1을, 권2에 기이 제2를, 권3에 흥법(興法) 제3과 탑상(塔像) 제4를, 권4에 의해(義解) 제5를, 권5에 신주(神呪) 제6과 감통(感通) 제7과 피은(避隱) 제8 및 효선(孝善) 제9를 각각 수록하고 있다.
 
삼국유사 권1 ‘왕력’에는 단군의 출생과, 혼인, 즉위를 거쳐 죽음에 이르는 역사적 사실 등이 아래와 같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옛날 환인의 아들 환웅이 자주 세상에 내려가 인간 세상을 구하고자 했다. 아버지가 환웅의 뜻을 헤아려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어 세상에 내려가 사람을 다스리게 했다. 환웅이 무리 3,000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 밑에 내려와 그곳을 신시라 이르고 그가 곧 환웅천왕이다.
 
환웅은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명(命)·병(病)·형(刑)·선(善)·악(惡) 등 무릇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맡아서 세상을 다스렸다. 이 때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있어 같은 굴속에 살면서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환웅은 이들에게 신령스러운 쑥 한 줌과 마늘 20쪽을 주면서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된다고 일렀다.
 
곰과 범이 이것을 받아서 먹고 근신하였는데 3·7일(21일) 만에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범은 이것을 못 참아서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웅녀는 그와 혼인해주는 이가 없으므로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를 가지게 해 달라고 기원하였다. 이에 환웅이 잠시 변해 혼인하여 아이를 낳으니 그가 곧 단군왕검이다.
 
왕검이 즉위 후 50년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일컬었다. 이어서 도읍을 백악산의 아사달로 옮겼다. 그 곳을 궁홀산 또는 금미달이라고도 했다.
 
단군은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고 주나라 호왕이 즉위한 기묘년에 기자(箕子)를 조선의 임금으로 봉하였다. 단군은 장당경으로 옮겨 조선이라 일컬었다.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서 산신이 되니 나이가 1,908세였다.”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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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 후 한국학계의 중시를 받고 있는 '삼국유사'

● 신화가 아닌 실재 인물
 
▽ 단군은 실제로 존재했다.

환인의 아들 환웅이 인간 세상에 내려왔다는 것은 선민사상을 말한다. 종교적인 의미에서는 신이 특정한 민족 혹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선택했다는 사상이다. 선민사상을 종교적인 의미로 표현한다면 하느님이 한민족을 선택한 민족이라는 뜻이다. 다른 표현은 환웅이 이끈 집단이 강한 부족이라는 뜻이다.
 
환인의 아들 환웅이 천하에 뜻을 두고 세상을 다스려 보기를 원한다. 아버지는 홍익인간으로 널리 세상을 이롭게 다스리라고 한다. 한웅은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세상을 다스려 교화하겠다는 재세이화(在世理化), 도(道)로써 세상을 다스리겠다는 이도여치(以道與治), 밝은 빛으로 세상을 다스리겠다는 광명이세(光明理世)를 건국이념으로 삼았다.
 
▽ 농사에 가장 중요한 ‘천부인’
천부인은 풍백, 우사, 운사로 바람, 비, 구름을 주관하는 자들이다. 이는 사람이 아니라 농사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짓는 자연 현상들이다. 농사가 중요한 경제적 기반이던 사회였으니까 농사를 짓는데 가장 중요한 것을 천부인으로 표현한 것이다.
 
▽ 곰과 호랑이의 실질적 의미는?
곰과 호랑이는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환웅은 100일 동안 동굴 속에서 마늘과 쑥만 먹으면서 견디라고 한다. 이 대목은 토템 신앙에 의해 형성되는 사회체제 및 종교 형태를 말하는 ‘토테미즘’이다.
 
토템이라는 말은 북아메리카 인디언인 오지브와족(族)이 어떤 종류의 동물이나 식물을 신성시하여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과 특수한 관계가 있다고 믿고 그 동물과 식물류(독수리 ·수달 ·곰 ·메기 ·떡갈나무 등)를 토템이라 하여 집단의 상징으로 삼은 데서 유래한다.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곰과 호랑이는 동물이 아니라 부족을 상징한다. 곰은 끝까지 참아내는 강한 부족, 호랑이는 중간에 포기하는 약한 부족이다. 선진 기술을 가진 환웅집단(이주민)과 곰부족(토착민)이 결합할 수 있었던 것은, 이주민과 토착민인 환웅과 웅녀의 결혼으로 맺어진 세기의 만남이다. 그들에게서 태어난 자식이 바로 단군왕검인 것이다.
 
고조선은 종교적 지배자와 정치적 지배자가 일치한 제정일치 사회이고, 청동기 문화가 발달했다. 하지만 그 시기에는 무기와 군사력으로 부하들을 무장시키고 힘으로 사람들을 통제하지 않았다. 다만 ‘신의 권위’ 즉 종교적 권위를 통해 지배를 정당화했다. 그러다가 철기가 등장하고 철제 무기가 보급되면서 전쟁이 치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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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군은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대통령이나 장관 같은 통치자의 직위명이다.  

 

‘신화’ 속에서 단군은 1500년까지 살다가 산속으로 들어가서 신선이 되었다고 ‘삼국유사’에 적혀있다. 여기서 단군은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대통령이나 장관 같은 통치자의 직위명이다.
 
그러므로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는 단군의 이야기는, 조선 왕조 500년처럼, 여러 명의 ‘단군’ 직위 통치자가 통치 권력을 이어온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조상님인 단군은 하늘의 자손임을 드러내는 선민사상을 의미하고, 선진 기술을 가진 이주민 집단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 일본의 단군 말살정책
 
일제강점기 때 초대 총독이었던 데라우치 마사다케는 “조선인에게 일본 혼을 심어줘야 한다. 그렇지 않고 조선인의 민족적 반항심이 타오르게 된다면 이는 큰일이므로 영구적이며 근본적인 사업이 필요하다. 이것이 곧 조선인의 심리 연구이며 역사 연구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민족의 전통과 문화를 뿌리 채 말살시키고 왜곡시켰다. 첫 번째 작업으로 단군조선의 기록을 불태웠다. 무려 20만 권의 역사책이 이때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남은 유일무이한 역사의 자료는 일연의 ‘삼국유사’였다.
 
우리나라의 최초국가인 개국신화는 학자들의 견해에 따라 많은 해석이 나왔다.
 
①대몽항쟁(對蒙抗爭)의 견해이다. 민족의 단합이 요구되는 시대에 단군을 민족의 시조로 받들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평양에 사당을 지은 후에는 명실상부한 국조가 된다. 또한 구월산에 삼성사(三聖祠: 환인·환웅·단군을 배향)가 있고 강동(江東)에는 단군의 무덤이 있다는 주장이다.
 
②불함문화론(不咸文化論)의 견해이다. 일제 때 사학자인 최남선은, 불함문화권에 속하는 민족은 한족·만주족·일본족이다. 백두산이 중심이 된 역사·종교·신화·민속·인류학 등의 문화 형성에 관계되는 모든 학문은 동방문화의 진수이다. 한국문화와 역사에서 구체적 실체로 나타난 것이 단군과 부루라는 주장이다. 부루(夫婁)는 고조선을 건국한 단군왕검의 아들이며, 부여의 2대 국왕이다.
 
③고고학적 견해이다. 고고학은 인간이 남긴 유적과 유물 같은 물질 증거와 그 상관관계를 통해 과거의 문화와 역사 및 생활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개국신화는 중국 화베이 지방에 위치한 산둥성에서 비롯된다. 북방계의 샤머니즘과 관련된 무씨사당 돌방〔石室〕내의 화상석(畵像石) 그림 문헌에 보이는 내용과 일치한다는 주장이다.
 
④단군신화에 역사적 입장에서 결론을 내린 견해이다. 단군신화는 삼신사상의 표현이고, 태양신화와 토테미즘이라는 두 계통의 신화가 정치와 사회적으로 혼재된 것이다. 단군신화는 고조선의 부족적 시조설화였다. 삼국통일과 고려시대에 민족의식이 고조되면서 한민족의 시조신화로 변했다는 주장이다.
 
⑤종교적 정치적 기능의 견해이다. 단군은 천신족인 환웅이 지신족인 고마족의 여성과 혼인하여 단군이 출생했다. ‘단군’이라는 호칭은 종교적으로 무군(巫君)이라는 의의가 강하고, ‘왕검’이라는 호칭은 정치적으로 군장(君長)의 의의가 강하다. 그러므로 종교적 기능과 정치적 기능이 명칭 상에서 구분된다는 주장이다.
 
⑥사회집단이었다는 견해이다. 고조선 계보가 한족(漢族)의 기자전설이 개입되어 있다는 지적이다. 위만조선을 단군조선에서 교체되는 것으로 이해하여, 고조선에 단군조선과 종래의 기자조선을 포함시킨다는 주장이다.
 
⑦단군 관계 문헌에 대한 견해이다. ‘삼국유사’는 불가(佛家) 계통의 사서이다. ‘제왕운기’ 등은 유가(儒家) 계통의 사서이다. ‘규원사화(揆園史話), 환단고기(桓檀古記)’ 등은 도가(道家)계통의 사서이다. 단군조선의 역사가 47대 마지막 왕에 이르기까지, 실사(實史)되었다는 주장이다.
 
⑧개국 연대가 종요하다는 견해이다. 단군은 중국의 요임금과 연결되어 있어서 연구를 필요로 한다. 씨족 사회에서의 씨족 토템이 생겼고, ‘군사 민주주의 단계’로 ‘군사수장’으로서의 단군이 등장했고, 계급국가 형성 후 고조선 국왕으로서의 단군이 등장한 것으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 ‘문헌과 고고학적’ 융합 해석해야
 

이상과 같이 단군신화의 이해는 문헌과 고고학적 방법을 연결시켜 분석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단군신화가 포용하고 있는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와 문화를 내포한 시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다.
 
신화는 종교적 교리 또는 역사적 진술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역사 중에서는 단군건국 시조신화를 으뜸으로 일컬어왔다. 신라‧고구려‧백제 및 가락의 건국신화들도 마찬가지이다. 신화는 역사적인 사실 그 자체가 아니더라도, 그 속에 내재된 역사성을 중시해야 한다. 그러므로 어떤 맥락에서든 신화의 의미는 풀려야 한다.
 
단군신화 건국신화는, 우리 민족이 수난을 당하고 위기에 처할 때마다, 민족이 단합하는 구심체 역할을 해왔다. 단군신화는 실재 존재인물로, 역사의 의미와 가치를 유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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