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양심, 한일관계개선의 선구자, 연극 오양심 제작(분단 70년 광복 70년 기념 특별공연)

여혜승 2019-11-25 (월) 08:22 4년전 843


 

- 연극, ‘이산아리랑’은 분단 70년 광복 70년을 기념한 특별공연
- 청소년과 대학생의 통일문제 관심제고 및 역사의 희생양이 된 선배들의 산 증언
- 한일 간의 갈등해소와 이산가족 자유 상봉에 대한 남북통일교육 지침

 [오코리아뉴스=여혜승기자] 연극 이산아리랑은 오양심이 제작하고 김승덕이 연출하여, 2015년 5. 16(금) 7시 30 ~ 5. 17(토)까지 서울 백암아트홀에서, ‘분단 70년 광복 70년 기념’ 특별공연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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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극은 2013년 12월 출간된 재일교포 구말모의 ‘이산아리랑’ 자서전을 희곡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다음은 이산아리랑 주제곡이다.

이산 아리랑은 아픈 것이 아니야 이산 아리랑은 슬픈 것도 아니야
꿈에서도 보고 싶은 그리운 얼굴 꿈에서도 듣고 싶은 정겨운 목소리
이산 아리랑은 꿈의 아리랑 이산 아리랑은 희망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름다운 이곳으로 아리랑 고개를 모두 함께 넘어 오소

이산 아리랑은 눈물이 아니야 이산 아리랑은 슬픔이 아니야
세상을 볼 줄 아는 눈에 문이야 세상을 열 줄 아는 마음에 문이야
이산 아리랑은 겨레아리랑 이산 아리랑은 통일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름다운 그곳으로 아리랑 고개를 우리 함께 넘어 가세

​이산 아리랑은 분단이 아니냐 이산 아리랑은 생이별 아니야
누구든 원하면 가볼 수 있어야해 언제든 원하면 만날 수 있어야해
자유 상봉 이제 우리가 하세 자유 통일 이제 우리가 하세
아리랑 아리랑 우리나라 금수강산 아리랑 고개를 넘어오고 넘어가세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이산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이산 아리랑

연극 ‘이산아리랑’은 극단 바람풀과 한글세계화운동연합이 청소년과 대학생의 통일문제에 대한 관심제고와 역사의 희생양이 된 선배들의 산 증언, 한일간의 갈등해소와 한일관계 개선, 이산가족 자유상봉과 통일교육의 지침이 되고자 무대에 올렸다.

극단 바람풀과 한글세계화운동연합은 전국 지방순회공연과 17개 시·도 교육청의 추천을 받아 ‘이산아리랑’을 연극으로 또는 동영상으로 ‘찾아가는 학교통일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다.

★이산아리랑 원작자, 해봉 구말모(재일교포)에게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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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아리랑, 출판기념회 장면이다

 2013년 12월 12일 ‘이산 아리랑’ 자서전 출판기념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재일교포인 나는 내 조국 대한민국에서 환희의 기쁨을 온 몸으로 느꼈다. 희수(77세)년을 맞은 나는 참석해 주신 내외귀빈께 “출판기념회에 오신 것을 대 환영합니다. 앞으로 10년 동안 더 노력하여 조국통일을 위한 일에 실적을 올려서 미수(88세)에도 이 자리에서 여러분을 다시 모시고 싶습니다. 청춘이란 시간이 아니고 열과 성을 다하는 사명감을 불태우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고 공약 한 적이 있었다.

그렇다. 지금으로부터 44년 전 모국의 유학길에 오른 나는 참으로 행복했다. 내 조국 대한민국에서 생애 처음으로 느끼는 자유였다. 일본에서 태어난 나는 억압과 소외 속에서 차별을 당하며 비참한 날들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민족적 긍지를 갖고 존경받는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해 나는 연세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국민대학교에서는 강사로 보람 있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분단된 조국의 통일론을 모색하기 위한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학도이면서, 조국과 일본의 우호증진을 위해 민간교류를 통한 친선활동에도 여념이 없었다.
 
그때 뜻밖에도 해외동포 유학생 100여명이 몽땅 구속을 당하여 영어의 몸이 되는 억울한 일이 벌어졌다. 냉전시대에 살고 있던 나도 역사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교도소의 독방에서 “하나님, 개죽음을 당할 수는 없습니다. 이 굴레에서 벗어나 다시 한 번 겨레하나되기 운동에 동참하게 해 주시옵소서. 분단의 냉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동포사회에서도 더 이상 일본의 비웃음을 사지 않게, 통일운동의 선구자로 목숨을 바치게 해 주시옵소서” 하고 간절하게 빌었던 때가 엊그제 같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듯이, 내 정성이 하늘을 감동시켰을까?’ 오양심이 제작하고 연출가 김승덕이 ‘이산아리랑’이라는 연극으로 나의 삶을 집대성했다니 두고두고 고마운 일이다. 또한 분단된 조국을 위해, 수개월 비지땀을 흘리며 통일을 절규한 배우들과 연극을 관람해 주신 모든 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김승덕 연출가에게, 이산아리랑은 어떤 연극인지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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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면이다.

<이산 아리랑>은 남북통일과 한국과 일본이 잘 지내기를 염원하여 만든 연극이다. 오직 가족을 위해서, 분단된 조국을 위해서,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서 굳세게 살아온 어느 재일교포의 이야기이며,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가난하고 힘들었던 그 시절, 우리 할아버지들은 주린 배를 움켜쥐고 현해탄을 건너갔다. 오직 가족을 위해 평생을 살다가 돌아가신 할아버지들을 생각하면 늘 죄송한 마음뿐이었다.

국악인으로, 연극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2013년 12월, 신촌 거구장에서 열린 ‘구말모선생 자서전 출판기념회’에 초대를 받은 영광을 안았다. 분단 조국에 의해 저질러진 누명으로 거의 전 인생에 걸친 삶을 억울하고 통탄스럽게 보낼 수밖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비극을 오히려 조국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시킨 업적, 뜨거운 열정으로 통일운동에 전심전력을 다해 인생을 바치고 계신 구말모 회장님의 삶의 모습에서 크게 감동받았다.

인간의 완성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인간적 성숙함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 여겨져 존경의 예를 표현한 적이 있었다. 그 계기로 구말모의 자서전 ‘이산아리랑’이 연극의 연출을 맡았다.

구말모의 자서전 ‘이산아리랑’은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 세대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자 준비했다. 또한 아직도 남한과 북한이라는 분단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의 가족이야기를 ‘이산아리랑’ 스탭진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연극이다. “관객들이 <이산아리랑>을 관람하고, 왜 이 연극을 만들었는지 그 진심을 알았으면 좋겠다.

<이산아리랑>은 간첩이 아닌 주인공이 간첩 누명을 쓰고 감옥에서 살다가 출옥한 장면인 과거회상으로부터 시작된다. 탄광노무자로 현해탄을 건너간 아버지와 그의 가족 이야기에서부터 연극은 막을 올린다.

우리 모두는 부모이고 자식이다. 일제강점기 때 우리는 가난했다. 나라를 잃어버린 서러움 속에서도 오직 가족을 위해 주린 배를 움켜쥐고, 우리 아버지들은 현해탄을 건널 수밖에 없었다. 그때 그 시절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은 재일동포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산아리랑>은 재일교포뿐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1910년부터 한일양국의 격동기를 관통하며 살아온 ‘해봉(이 석과 문상준 분)’은 석탄노무자였던 아버지의 아들로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인이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조센징’이라는 놀림을 당하며 일본아이들에게 갖은 수모를 겪는다. 하지만 그는 열혈청년이었다. 일본의 와세다대학교와 와세다대학원에서 또한 한국의 연세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며, 향학열로 마지막 수업까지 불꽃을 피우고 있는 와중에,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건너간 누나를 만났다는 이유로, 철창신세를 지고 만다.

41년 동안 간첩 아닌 간첩으로 살아온 그는 학창시절부터 오직 조국통일과 한일양국의 관계 개선을 위해서 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하지만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축구선수로 활약하여 신체 건장했던 그는, 심한 고문으로 고막이 터져 한쪽 청각을 잃어버렸고, 만신창이가 된 몸은 반신불수가 되어버렸다.

감옥에서 나온 ‘해봉’은 좌절하지 않았다. 역사의 산 증인으로, 선구자로 현해탄을 오고가며, 오직 조국통일의 염원과 한일관계 개선의 선구자로, 남은 목숨도 바치고 있다. 극중 구해봉은 역사의 희생양이 되어, 연좌제에 내몰린 한국의 친인척에게 상처를 준 것을 가장 가슴 아프다고 절규한다.

<이산아리랑>은 우리의 음악인 국악을 가미했다. <이산아리랑>은 이산가족의 이야기이다. 우리 역사의 산증인, 우리할아버지와 우리 아버지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한 연극이다. 
 
★‘이산아리랑’의 제작자 오양심을 말한다.

왼쪽부터 이택우(첫째줄 교도관역), 오양심(제작자), 이상복(아버지역), 서민희(어머니역), 손영호(김희로역), 김승덕(셋째줄왼쪽 연출가), 박근영(검사역), 이은서(영자역), 문상준(젊은해봉역), 이석(늙은해봉역), 김현진(조연출), 김명환(검사관역), 김진옥(강이찌역)배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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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자 오양심(왼쪽 두번째)이다.

2015년은 광복 70주년 분단 70주년을 동시에 맞이하는 역사적인 해이다. 한일수교 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한글세계화의 길, 문학의 길을 걷고 있는 오양심에게 이산가족의 아픔을 이야기한 ‘이산아리랑’의 자서전은 시대정신의 자극제였다. 광복과 분단을 대변할 수 있는 희로애락의 산 증인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시간은 길지 않았다.

인간의 휴머니즘과 질곡의 역사에 대한 자유를 표현하고 싶은 오양심은 평소 친분이 두터운 ‘김승덕 연출가’에게 ‘이산아리랑’을 연극으로 만들자고 의사타진을 했다. 예술을 지향하고 있는, 그것도 오직 예술을 통해서만 삶을 정당화하고 있는 ‘김승덕 연출가’는 질곡의 역사를 현실로 반영한다는 불편함 때문에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비극의 길을 걷고 있는 두 사람은, 우리 모두가 주인공인 시대정신으로, ‘이산아리랑’이라는 이미지 특유의 사실성을 받아들이기로 의기투합을 했다.
 
막상 ‘이산아리랑’의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연극으로 이미지화 시키는 일은 쉽지 않았다. 국가와 사회의 왜곡된 선입견과 위선과 한계들을 배제하기 위해서는 연극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마주치는 의미지들이 너무 과도했다.

연극은 매일 죽어서 다시 살아나는 일회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동안의 광복과 분단 70년사를 연극으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벅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산아리랑’이라는 연극에 수개월 매달리고 있는 제작자 오양심은 국가에서 적폐를 해소한다는 진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막을 내린 연극이 훗날 다시 되살아나는 것처럼 연극 팬들은 ‘이산아리랑’을 기다리고, ‘이산아리랑’은 팬들은 기다리며, 기다림 속에서 영원히 생명을 이어갈 것을 확신했다. 오직 우리들의 할아버지와 우리들의 아버지 세대의 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리기 위해, 다가올 우리의 새날을 위하여, 그녀는 신열을 쏟아 부었다.
 
그동안 오양심이 행동으로 목청을 높였던 것은 한국어세계화 운동이고 시낭송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에는 ‘꿈은 이루어진다’는 시를 낭송했고, 2003년에는 미국 워싱턴 한미동맹 50주년, 한국인 이민 100주년 기념식장에서 ‘우리는 하나다’라는 초대시 낭송을 했고, 미국 뉴욕의 한국전쟁기념관에서는 ‘흰옷이 부르는 노래’ 등을 낭송했다. 또한 싱가포르 한국어세계 웅변대회에서도 ‘한국어를 세계 으뜸어로 만들어 지구촌 문맹을 퇴치한다’는 시낭송을 했다.

 2012여수세계박람회에서는 ‘일어서는 바다여, 열리는 우주여’라는 초대시를 낭송했고, 201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한일예술제에서는 ‘해가 뜬다 순천의 중심도시 순천이 뜬다 대한민국이 뜬다’ 등의 초대시를 낭송했다. 하지만 오양심은 시인이면서도 한일관계 개선가로 주목받고 있다.

오양심은 한국과 일본은 예술을 질곡의 역사에 고정 관념 해석이 아닌, 예술 그 자체의 예술로 받아드려야 한다는 이론으로, 한일친선예술제와 한일관계개선의 선구자들을 소개하는 장소와 지면을 여러 군데 할애하여 국위를 선양해 주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재일교포의 일생을 승화시켜주는 과감함을 연극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특히 오양심은 칼럼리스트로 다양한 단체에서 위선과 왜곡된 국가의 만행과 외교정책들과 인성교육을 비판하며, 실질적인 현장글쓰기 참여가로 세상 속에서 진일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양심의 글쓰기는 계속되고 있지만, 결코 전문용어와 미사어구를 남용하며 그만의 지식에서 머물지 않는다. 오양심의 글은, 누구나 쉽게 또한 가장 핵심을 집어내는 글쓰기로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오양심 그녀의 활동과 집필들이 21세기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가늠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녀가 생각하는 한일관계 개선문제와 남북관계의 개선 문제가 권력의 남용들 속에서 얼마나 많은 질곡들을 흡수하며 받아드리고 있는지 그녀는 어렴풋이 알고 있다. 
 
21세기는 누구나 주인공으로 살아가야 할 사명감을 갖고 있다. 하지만 타인의 고통을 스펙터클한 오락거리로 받아들이고 있을 뿐, 우리는 본연의 자세를 잃어버리고, 70년 동안이나 분단된 국가에서 대책 없이 살아가고 있다.
  
오양심은 6, 25전쟁 때 참전한 국가유공자의 자녀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살아생전 오양심이 국가유공자의 자녀답게 보훈정신과 시대정신의 주인공으로 살아주기를 원했다.
 
그에 힘입은 오양심이 구말모의 자서전인 ‘이산아리랑’을 선택하여, 광복 70년 분단 70년 기념 특집극이라는 연극을 제작한 그 자체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애국애족 정신을 겸비한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숭고하고 존엄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다.
 
올해는 한일수교 50주년이며, 광복70주년이 되는 해이다. 문화예술적인 재주가 다재다능한 한국의 오양심 시인은, 일본의 붓으로 그리는 그림으로 정평이 나있는 세계적인 서예가 고바야시 후요와 함께 그녀의 고향인 순천의 청암대학교 교정에서, 시(詩)화(畵)의 초대전을 열 예정이다.

2015,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 한일여류문화예술교류전은 2015, 9,21~2015, 9, 22일까지 국회의원회관 2층 로비에서 선보인다. 오양심시인은 오직 한일관계 개선이라는 열정과 ‘한국과 일본은 지구의 희망이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일본의 서예가 ‘고바야시 후요’와 함께 한일여류문화예술교류전을 준비 중이다.

  ★이산아리랑의 인기 아역배우 이혜린(4세)의 역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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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린이 도라지타령을 부르는 장면이다.

‘이산아리랑’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배우는 아역배우 이혜린(4세)이었다. 아역배우에게 가장 많이 박수를 쳐준 사람은 ‘이산아리랑’의 원작자인 재일교포 구말모였다.
 
그는 가족이 화목했던 그 옛날, 일본에서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께서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시면 가족을 한자리에 불러놓고 ‘아리랑’ 등의 노래를 부르게 했고, 특히 막내 여동생에게 ‘도라지타령’을 부르도록 했다는 말을 하면서 눈시울을 적시며 이혜린과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다.
 
재일교포 구말모는 연극이 끝난 후 일본으로 돌아가서, 아역배우 이혜린에게 편지와 함께 선물까지 보내주시는 친절을 베푸셨다.
 
그에 보답하기 위해 아역배우 이혜린의 어머니는 즉시 ‘이산아리랑’ 원작자이신 재일교포 ‘구말모’에게 답장을 보내드리는 아름다운 미덕을 느끼게 해주었다. 

▲제일교포 구말모(한가운데)와 함께 연극이 끝나고 기념촬영


‘연극 이산아리랑 구성원들’ 왼쪽부터 조연출 김현진, 연출 김승덕, 해봉아버지역 김상복, 영자역 이은서, 김희로역 손영호, 해봉어머니역 서민희, 젊은해봉 문상준, 원작자 해봉구말모, 늙은해봉 이석, 검사역 박근영, 검사관역 김명환, 여동생역 이혜린, 강이찌역 김진옥, 교도관역 이택우, 제작자 오양심, 해봉누나역 박소희, 프로듀서 온성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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