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우 건강교육] 아스퍼거 (이야기 기술) 20

이훈우 2020-10-28 (수) 09:16 3년전 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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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우/ 일본동경한국학교교감

한글세계화운동연합 일본 본부장

 

낙동강위수강이 만나는 곳 산허리에 100 여 호의 크고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농촌 마을이 있습니다. ‘신산이라고 하는 나의 어릴 적 고향입니다. 본류인 낙동강과 지류인 위수강이 만나면서 만들어지는 삼각주를 시작으로 40여 킬로미터 정도의 안계 평야가 펼쳐집니다. 지금은 수리개발공사로 홍수를 예방하고 있지만 내가 어릴 때는 조금만 큰 비가 와도 낙동강 물이 위수강을 따라 역류하는 바람에 매년 한 두 번씩 물난리를 겪어야했습니다. 동네 입구까지 물이 차올라 그 넓은 평야가 바다처럼 변하곤 했었습니다. 어떤 해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우리 집 안마당까지 물이 차오르고 등딱지가 솥뚜껑만한 자라가 마루로 올라 와 어슬렁거리던 기억도 있습니다.

 

이렇게 비가 많이 와 물난리를 겪는 날이면 학교도 빨리 파하게 됩니다. 멀리서 등하교를 하는 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에 하굣길 안전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물난리로 인한 위험과는 상관없이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친구들과 신나게 노는 일에 정신을 팔 때가 많았습니다. 작은 도랑에서 밀려오는 강물을 몸으로 느끼면서 목숨을 담보로 즐기는 물놀이는 스릴감을 넘어서 위험천만한 일이지만 어른들은 그냥 보고만 계십니다. 시골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여러 경험들로 단련되어 적어도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쯤이면 자기 목숨은 자기가 보호한다고들 믿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예기치 않는 일들로 사고를 당하거나 목숨까지 잃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보면 우리 또래 중에서도 여름에 물놀이 하다가 익사를 당한 친구, 겨울에 얼음 위에서 불놀이를 하다가 얼음이 녹는 바람에 얼음 속으로 들어가 나오지 못한 친구, 가을에 나무열매를 채취하다가 나무 위에서 떨어지거나 말벌에 쏘여 고생을 한 친구, 봄에 산나물 뜯으러 갔다가 발을 헛디뎌 절벽으로 떨어지거나 독사에 물리는 사고를 당한 친구 등 수 많은 사고와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기 목숨 자기가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방에 위험 천만한 일들이 널려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도 물난리 속에서 어른들의 농작물 걱정은 뒤로하고 신나게 물에 잠긴 논에서 놀다가 도랑에 빠져 두 번이나 목숨을 잃을 뻔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초등학교 1학년 때는 날이 시퍼렇게 선 낫이 얼마나 잘 베어지는 지도 모르고 친구와 장난을 치다가 목숨이 위태로운 정도로 손목에 큰 상처를 입기도 했습니다. 5학년 때는 땅벌 집을 잘 못 건드려 벌들에게 너무 많이 쏘여 얼굴이 우주인처럼 부어 며칠을 앞도 못 보았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겨울에 쇠죽을 끓이기 위해 작두로 볏짚을 썰다가 동생과 박자를 맞추지 못해 손목이 들어간 상태에서 동생이 작두를 내리는 바람에 급하게 손을 뺐지만 손가락 한 마디가 잘려나갔던 일 등 수 없이 많은 사건과 위험 속에서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물난리로 바다가 된 평야에서 커다란 플라스틱 대야(다라이)’를 타고 밥주걱으로 노를 저으며 어른들의 걱정은 뒤로하고 물놀이를 즐깁니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로 벼농사를 주로 짓는 우리 동네에서는 잘 보지 못하는 수박, 참외, 사과 등 과일들이 물에 떠내려 오기도 하고 때로는 고양이나 강아지 등 가축들도 떠내려 옵니다. 그럴 때면 다라이 배를 타고 과일을 건지기도 하고 가축들을 구해주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관심이 많은 것은 1미터가 넘는 큰 잉어를 잡는 일입니다. 낙동강 깊은 곳에서 살다가 강물이 불어나고 물이 뒤집어 지면 잉어들이 강물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러다가 강물이 줄어들기 시작하면 귀신처럼 느끼고 바로 뒤돌아서 자기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는데 그 길목을 지키다가 잉어를 잡는 것입니다. 커다란 그물(반도, 족대)로 길목을 막고 기다리면 잉어가 그물 속으로 들어가는데 워낙 조심성이 많고 예민한 잉어인지라 좀체 그물 안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침묵을 지키며 두 시간 세 시간 이상을 잉어와 기 싸움을 하고 난 뒤에도 운이 좋아야 잉어를 잡을 수 있습니다. 아무에게나 잡혀주지 않는 잉어인지라 예부터 어른들은 산삼과 마찬가지로 잉어를 영물로 대접했나봅니다.

 

물이 빠지기 시작하면 갑자기 급물살로 바뀌기 때문에 커다란 그물을 물속에 담구고 몸으로 버티는 일은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그렇지만 잉어와 목숨을 건 눈치싸움을 하면서 인내하는 것은 또 하나의 수양이었고 삶의 수련이었습니다. 때로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그것은 송아지나 돼지 등 큰 가축들이 떠내려 오는 일인데 신기하게도 배우지도 않았을 수영을 그렇게 잘 할 수가 없습니다. 개가 수영하는 것을 본 적은 있어도 송아지나 돼지가 수영을 하는 모습은 시골 아이들에게도 신기하기만 한 모습입니다. 그럴 때면 우리들은 탄성과 응원의 박수를 보내곤 했었습니다. 송아지가 수영을 하다니……,

 

어른이 된 소는 수영뿐만 아니라 어려운 농사일도 척척 해 내며 사람의 말까지도 거의 다 알아듣고 행동을 합니다. 나는 어릴 때 우리 집 누렁이와 물속에서 꼬리를 잡고 놀다가 수영을 배웠었습니다. 먼 길을 갈 때는 등 위에 나를 태워주기도 하고 갑자기 위험이 닥치면 누렁이는 큰 덩치로 나를 보호해기도 했었습니다. 옛 어른들은 길을 가다가 갑자기 호랑이를 만나면 소꼬리를 잡고 있으면 살 수 있다.’고 늘 말씀하시곤 했었습니다. 누렁이는 우리와 살았던 또 하나의 영물이었습니다.

지금도 비가 오는 날이면 물난리로 온 세상이 황금색 바다로 변했던 고향 마을과 갓 난 아이보다 더 큰 잉어를 잡던 생각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