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우 수필] 비밀의 방(가설극장, 월하의 공동묘지) ⑯

이훈우 2020-09-07 (월) 07:49 3년전 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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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훈우/ 일본동경한국학교교감

한글세계화운동연합 일본 본부장

! 글로는 못 나가! 들어와서 저-짜로 돌아 가!’

아이고, 잘 몰랐심더 미안함미데이.’

엉거주춤 엉덩이를 추스르고 어둠 속에서 어슴푸레 보이는 사람들 틈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서 바닥에 자리를 잡습니다. 우리 동네에는 1년에 한 두 번씩 가설극장이 들어옵니다. 가설극장이 들어올 때면 며칠 전부터 근처 동네들을 돌며 엄청 시끄럽게 선전을 해 댑니다.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영화! 우리들의 마음을 뜨겁게 달궈주는

이야기! 윤수일과 심순애가 여러분 곁을 찾아옵니다! 바로 내일입니다

가설극장이 들어오는 날이면 이웃동네까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영화 이야기로 꽃을 피웁니다. 당시에는 거의가 흑백영화로 상영되며 어떤 영화는 무성이라 성우가 마이크를 잡고 감정을 한껏 잡아가며 영화에 맞게 구수하게 이야기를 해 주기도 합니다.

영화 상영을 시작하기 며칠 전부터는 동네 중앙의 공터에 천막이 쳐지고 낯선 사람들이 오가며 마을 전체를 들뜨게 만듭니다. 일주일 정도 머물며 날마다 다른 영화를 상영하는데 입장료가 20원이었습니다.

돈이 없는 어린아이들은 어떻게든 공짜로 들어가 보려고 천막 주변을 어슬렁거리기도 합니다. 어떨 때는 쌀이나 곡식을 돈 대신에 받아주기도 했지만 보통은 돈을 요구하는데 당시 시골에는 돈이란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동네에서 주먹깨나 쓰는 형들은 천막 입구를 지키는 담당자와 실랑이를 벌이며 공짜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남의 동네에 허가 없이 들어와서 공짜로 공연하는 것에 대한 실랑이지만 실제로는 이장님과 사전에 협상을 하고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찌되었든 힘이 없는 우리들은 찢어진 구멍이나 겹쳐진 틈으로 들어가려고 기회를 보지만 그것도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미리 그러한 상황을 예상하고 감시자 한두 명이 계속 천막 주변을 돌아다니며 지키기 때문입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가설극장이 올 때면 날마다 영화를 보러갑니다. 그런데 오늘은 20원이 없습니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어떻게든 공짜로라도 보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천막의 겹쳐진 부분에다가 엉덩이를 들이밀고 있으면 안에서 관리하는 아저씨가 엉덩이를 잡아당기며 나가는 문은 따로 있다고 안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모른 체 천막 안으로 들어가서 영화를 보는 것입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갈라진 천막을 찾아 엉덩이를 들이밀고 있으니 진짜로 안에서 들어오라고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너무 고마운 마음에 연거푸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고 슬그머니 자리에 앉아 화면을 보는 순간 너무 놀랐습니다. 영화는 벌써 조금 시작된 상황이었는데 화면에 귀신들이 날라 다니며 피가 보이고 기분 나쁜 음악들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나는 귀신을 정말 무서워하고 싫어합니다.

두 귀를 틀어막고 머리를 양쪽 다리 사이에 처박아도 소리는 계속 들려왔습니다. 다시 나가기도 그렇고 참고 견뎌보려고 애를 써 봤지만 점점 귀신 소리는 크게 들려오기만 했습니다. 얼마 동안을 그렇게 고문을 당했는지 모릅니다. 공짜로 들어와서 벌 받는다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고 초죽음이 될 즈음에 영화는 끝이 났습니다.

시골에는 화장실이 마당 건너 대문간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집은 제법 잘 살아서 마당이 아주 넓습니다. 아이들 십여 명이 모여서 축구를 할 정도였습니다. 넓은 마당 때문에 평소에도 밤이면 화장실 가기가 무서워 중간쯤에 있는 거름터기에서 볼 일을 볼 때가 많았습니다.

그럴 때면 키우는 강아지가 어디서 냄새를 맡고 달려와 엉덩이를 핥으며 방해를 하는 바람에 성가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화장실은 진짜로 가기 싫어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난 뒤는 화장실이든 거름터기든 밤에 밖으로 나오는 것이 무서워서 한동안은 고생을 많이 했었습니다.

6학년을 졸업하고 중학교 가기 전에 대구에 사는 누나 집에 구경을 가게 되었습니다. 촌놈이 도시 구경은 처음이라 신발도 새로 사고 옷도 새로 구입하여 들뜬 마음으로 누나 집을 찾았습니다. 넓은 시골에 비해 좁은 방에서 답답하게 생활하는 누나를 보면서 그 좋은 시골을 버리고 왜 도시에 와서 이렇게 힘들게 살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시골은 생각만 하면 뭐든 이곳저곳에서 다 공짜로 구할 수 있는데……,

훈우야! 영화 보러 갈래?’

열 살이나 많은 누나가 시골에서 온 동생을 위해 오늘은 큰마음으로 한턱을 썼습니다. 누나와 나는 저녁을 먹고 대구의 가장 중심지에 있는한일 영화관이라는 곳으로 버스를 타고 이동을 했습니다. 복잡한 절차를 거쳐 자리에 앉아서 화면을 보는데 어디서 많이 보았던 제목이 소개되고 있었습니다.

그 제목은 바로 월하의 공동묘지!’ 아이고, 몇 년 전에 우리 동네 가설극장에서 머리박고 귀 틀어박으면서 보았던 바로 그 영화였습니다. 그 동안 조금은 성장했지만 그래도 귀신은 싫었습니다. 반쯤은 보고 반쯤은 눈을 감았습니다. 소리는 어쩔 수 없어서 한 번 더 고문을 당했습니다. 누나에게는 내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누나! 고마워. 영화 너무 재미있었어!’

그랬니? 나가서 우리 빵 사먹고 집에 가자.’

당시에는 제빵기에서 구워내는 빵이 귀했고 젊은이들은 빵집에서 빵과 우유를 먹으며 데이트도 즐기던 때였습니다.

대학에 가고 나도 여자 친구를 사귀었습니다. 뜨거운 어느 여름 날 여자 친구가 영화표를 구했다고 같이 가자고 합니다. 나는 평소 영화를 좋아하던 터라 제목도 안 물어보고 흥겹게 영화관으로 갔습니다. 아뿔싸, 고전영화 재감상이라는 선전과 함께 눈에 익은 영화 제목이 쓰여 있었습니다.

바로 월하의 공동묘지! 어떻게 싫어하는 영화를 세 번이나 보게 되었는지 참 신기하기도 하고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왔지만 표시내지 않고 이번에는 눈뜨고 모두 감상을 했습니다. 좀 시시하기도 하고 별 재미는 없었지만 여자 친구는 무섭다고 아우성을 치곤 했습니다. 영화보다는 아우성치는 재미로 영화관에 온 느낌이었지만 같이 장단을 맞추어 주었습니다.

나는 지금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영화관을 찾고 있습니다. 영화를 감상하고 나올 때면 늘 월하의 공동묘지가 생각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