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문화 탐방기) 아쟈수와 망고 풍요의 나라 필리핀으로

김우영 2020-08-03 (월) 14:52 3년전 1601  

​(필리핀 문화 탐방기) 아쟈수와 망고 풍요의 나라 필리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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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8.252b9189f4f2692cbea4ce4e9e539e311a_1596433957_8352.jpg (필리핀 누에바에시아 팔라이시티호텔 중앙무대, 김우영 작가와 김애경 소프라노의 듀엣공연)

  초여름이 기웃거리는 6월 초순. 한국 GPF(Global Peace Festival)재단에서 주관하는 해외문화교류 행사에 참여하였다. 6월 5일부터 9일까지 3박 5일간 필리핀(Philippines)에서 갖은 행사는 매우 뜻 깊고 평생 잊지못한 추억의 벼갯잎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첫 날 아침 워크숍을 시작으로 팍상한으로 이동하여 방카(통나무 배)를 이용 레프팅을 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누에바에시하를 방문하여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오지지역 ‘리쟐(Rizal)마을’에서 랜턴을 전달하고 돌아왔다. 무더우면서 자연풍광이 아름다운 나라 필리핀의 뜻 깊은 문화탐방기를 기행문 형식으로 일정별 기록하였다. 여행과 변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생명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소설 ‘이방인’에서 반항적 인간의 길을 제시한 저 유명한 프랑스의 작가 ‘알베르(Albert Camus)’는 여행을 이렇게 정의하였다.

  “인생에서 삶의 의미를 전혀 찾을 수 없는 것이며 이것은 인간과 세계와의 관계 그 자체에 내재한다.” 

  쾌락은 우리를 자기 자신으로부터 떼어놓지만, 여행은 스스로에게 자신을 다시 끌고 가는 하나의 고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중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자식에서 만 권의 책을 사주는 것 보다 만 리의 여행을 시키는 것이 더 유익하다.”
  “정녕 떠나는 자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1. 인천공항으로 출발 - 6월 5일(화) 6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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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색으로 산하가 물 들어가는 윤택함을 차창으로 보며 오후 12시 30분 KTX 열차로 대전역에서 서울역으로 향 하였다. 창 밖에 비치는 논에는 벌써 모내기가 이루어져 들판을 푸르게 단장하고 있었다.  뚜--- 하고 긴 목 즈려 빼며 힘차게 1시간여 달린 열차는 숨 가쁜 호홉을 가다듬으며 서울역에 도착하였다. 무거운 가방과 기타를 어깨에 맨 우리 부부는 서울역에서 인천공항으로 환승(Fransfer)하였다.  

  서울역 왼쪽 지하 엘리베이터로 내려가 고속직통 전철을 타고 인천공항으로 출발했다. 처음으로 타 보는 인천공항 전철이다. 전철이라고 하지만 일반전철과 달리 KTX 열차 형태를 갖춘 고급형이었다  무정차로 1시간여 달린 전철은 인천공항에 멈추었다. 세계 제1의 공항으로 평가받은 시설답게 깨끗하고 질서 정연하였다. 넓은 공항이라서 탑승하고 하는 목적지를 물어서 도착하였다. 

  시간이 남아 한쪽 의자로 옮겨 앉아 우리는 기타를 연주하며 잔여시간을 여유있게 보냈다. 서편으로 노을이 지는 초저녁 즈음 우리는 일행과 만나 7시35분 필리핀 마닐라 니노이 아키노공항으로 가는 제주항공(7C 2301편)에 몸을 실었다.

  2. 필리핀 마닐라 니노이 아키노 공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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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항공(JEJU AIR)은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 항공에 비하여 소형 비행기이었다. 비행기 안은 승객으로 만원을 이루었다. 아내가 함께 앉았으면 하기에 옆자리에 다른 일행(경북 상주시 고명환)에게 양보를 구하고 아내와 함께 나란히 앉았다. 아뿔사, 이 분들도 부부가 아닌가……?  우리 때문에 부부를 다른 의자로 떼어놓는 이별의 송구함을 제공했다. 이 인연으로 인하여 우리는 여행기간 내내 만나 친구가 되었고 두 부부간이 다정하게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비행기가 작고 좁아 힘들었다.

  신문을 보고 잠을 청하는 등 지루한 시간은 어언 4시간 정도를 날아 마닐라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Manila International Airport, 國際空港)에 도착하였다.  마닐라 국제공항은 필리핀의 수도권 메트로 마닐라(Metro Manila)에 있는 국제공항이다. 필리핀 수도인 마닐라도 이 메트로 마닐라 권역 안에 있다. 마닐라 국제공항은 메트로 마닐라 안 파사이(Pasay) 지역과 파라냐케(Parañaque)지역 접경에 자리를 잡고 있다.  파사이 파이브스타(Five star) 버스터미널에서 택시로 5분 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도심 접근성이 뛰어나다.

  마닐라 국제공항은 1981년 처음 세워졌다. 1983년 필리핀 민주화 운동 지도자로 당시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Ferdinand Marcos∙1917~1989)정부에 저항했던 베니그노 ‘니노이’ 아키노(Benigno ‘Ninoy’ Aquino∙1932~1983)가 이곳에서 암살당했다. 이런 이유로 이 공항은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이라는 별칭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공항에는 모두 3개의 터미널이 있는데, 이 가운데 2터미널은 필리핀항공(Philippine Airlines)이 독점적으로 사용하고 있고, 3터미널은 필리핀 저가 항공사인 세부퍼시픽(Cebu Pacific)이 주로 이용한다. 

   밤 11시 늦은 시간에 도착한 우리는 출국수속을 밟는데도 무려 1시간 30분여를 소요했다. 전산의 시스템과 인력, 시설의 미흡함이 그 이유 같았다. 세계 최고라는 우리나라 인천공항과 비교되는 순간이었다. 세계 10위권 국민소득 2만 달러의 부국과 1,750달러의 소국과 차이를 실감하였다.  필리핀 공항에 도착하여 버스에 옮겨타자 현지여행사 강현우 차장이 첫 인사를 한다. 휜칠한 키에 준수하게 잘 생긴 모습의 강 차장은 말한다.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하듯이 필리핀에 오셨으니 필리핀 인사말 몇마디 알아두세요.” 

  “마간당 우마가 보(아침 인사)”
  “마간당 하쁜 보(오후 인사)”
  “마간당 가비보(저녁 인사)”
  “빠알람 바바리(안녕히 계세요)”
  “살라마 보(감사합니다)"

  현지 버스로 이동중에 필리핀 말을 배웠다. 30여분 달리자 마닐라시내 센트롤 차이나타운에 있는 라마다(Ramada)호텔에 도착하였다. 일행은 각자 방을 배정받아 키를 들고 룸으로 들어갔다. 아내에게 말했다.

  “자, 이제 우리들의 즐거운 여행이 시작되네요. 행복하고 보람있는 여행을 하고 갑시다.” 

  하면서 아내를 가볍게 앉아 주었다. 그러나 아내도 피곤한 기색으로 웃으며 대답한다. 

  “예 그래요. 즐겁게 지내다 가요.”

 3. 필리핀에 대하여 - 6월 6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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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닐라 라마다(Ramada)호텔에서 하루 휴식을 취한 우리는 아침에 호텔 세미나룸에서 워크숍을 간단히 갖았다. 한국 GPF가 그간 해온 사업이며 앞으로 해나가야 할 일에 대하여 연찬을 했다. 특히 이번에 누에바 에시하에 있는 오지마을 리쟐에 가서 추진 할 All lights 사업 랜턴 전하기 사업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을 들었다. 

   “One Family Under God!" 

  미리 대기하고 있던 호텔 앞 버스에 승차하였다. 그리고 필리핀의 명소 팍상한(Pagsanjan)을 항하여 출발했다. 버스에 타자마자 영화배우처럼 잘 생긴 현지 마닐라 여행사 강현우 차장이 필리핀에 대하여 논리정연하게 설명한다.  탐험가 마젤란이 1521년 최초 발견한 필리핀은 인구 1억명과 국토면적은 남한 3배, 남북한 1.3배나 넓은 곳이다. 정책은 종교정책(천주교)과 여성우월(남성우민), 혼열정책(스페인)을 추구한다. 400년의 짦은 역사중에 스페인 330년, 미국 45년, 일본 3년을 지배받는다. 

  우리나라에서 비행기로 4시간 정도 소요되고 시차는 1시간이 느리다. 언어는 타갈로그어이다. 적도의 약간 북쪽, 아시아 대륙 남동쪽의 서태평양에 산재하는 7,107여 개의 섬들로 구성된 나라이다.  1565년부터 에스파냐가 정복하였고, 1898년 독립을 선언하였으나 에스파냐-미국 전쟁으로 미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1943년 일본 점령을 거쳐 1945년 미국군이 탈환한 후 독립하였다.

  필리핀의 정식 명칭은 필리핀공화국(Republic of the Philippines)이다. 필리핀해(海), 셀레베스해, 남중국해의 경계를 이루며 타이완[臺灣]섬과 보르네오섬, 셀레베스섬 사이에 있다. 면적은 30만 400㎢에 달하는데, 국토를 크게 삼등분 할 수 있다.   곧, 지도상에서 북부의 루손섬과 중부 지역에 군집한 수 천 개의 섬인 비사얀제도 그리고 남부 지역의 민다나오섬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는 종족·언어와 같은 문화적 요소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지리적 구분에 의한 것이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해양국으로 인근 바다가 태풍의 발생지이며 환태평양조산대에 있기 때문에 화산과 지진으로 인한 피해도 적지 않다.  말레이시아사바주(州)를 둘러싼 영유권 갈등, 스프라틀리 군도(Spratly Islands)를 둘러싼 베트남·말레이시아·중국·타이완과 영토분쟁을 겪고 있다.  필리핀 국명(國名)은 16세기 중엽 파견된 에스파냐 탐험가 빌라로보스(Villalobos)가 당시의 에스파냐 황태자인 필립의 이름을 따서 'Las Islas Filipinas'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전형적인 농업국이자 세계 이민 근로자의 주요 출신국으로, 2005년 전 세계 190개국에 필리핀 주민이 진출하였으며 이들이 본국으로 송금한 액수가 107억 달러에 이른다.   지방 행정구역은 주(province), 시(city), 군(municipality), 바랑가이(barangay)로 나누고 1989년 '공화국법 제 6766호'에 의거 지방자치를 위하여 무슬림 지역인 민다나오와 코르디예라(Cordillera)를 새로이 자치지역으로 선정하였다. 각 행정지역에는 행정자치 장(長)과 부장(副長), 의원이 있으며 바랑가이에는 바랑가이 장과 바랑가이 위원회 위원이 있다. 1991년 지방자치법(Local Government Code)이 제정되어 중앙정부로부터 조세권을 비롯한 일부 권한을 양도받았다.

 4. 필리핀의 관광명소 팍상한(Pagsanjan)으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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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팍상한(Pagsanjan)은 세계 7대 절경에 속하며 필리핀의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과 <플래툰>의 촬영지였던 곳으로 스릴 만점의 급류타기를 즐길 수 있다.  이곳의 정식 명칭은 마그다피오(Magdapio) 폭포다. 팍상한 계곡은 이곳에서 가장 큰 폭포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곳에 가려면 ‘방카’라는 통나무배를 타고 가야하며 이 배는 배에 탄 사람의 순수한 힘만으로 밀고 가야 한다. 약 1시간 정도 거슬러 올라가면 팍상한을 만날 수 있다. 

  일행은 팍상한에 도착하여 점심을 뷔페식으로 각단히 먹었다. 그리고는 헬멧과 수상자켓을 입는 등 방카(통나무 배)레프팅에 따른 만만의 준비를 갖추었다. 일행의 귀중품은 개별 서랍장안에 넣고 채비를 갖춘 일행은 팀을 이루어 방카에 조심스럽게 옮겨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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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마닐라에서 1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마그다피오(Magdapio) 팍상한 폭포. 세계 7대 절경이며 영화 <지옥의 묵시록>과 <플래툰> 촬영지에서 소프라노인 아내는 절벽 사이의 울림을 활용 '방카'라는 통나무배를 타고 성악을 실컷 불렀다) 

 아내와 함께 한 조를 이루어 방카에 타고 사공 2명이 앞 뒤에서 끌고 미는데로 계곡물을 역류하며 올라갔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이라서 흙탕물이었다. 올라갈수록 물의 흐름은 좁아지면서 급류를 이루고 있었다.   앞에서 이끄는 젊은 사공은 급류와 좁은 계곡, 바위사이를 토끼처럼 펄쩍 뛰면서 올라가는데 힘겨워 보였다. 뒤에는 다행히 나이가 좀 들어보여 덜 힘들어 보였다. 팍상한에서 아내와 둘이서 방카를 타고 역류하며 올라간다  
 

  더욱 난코스는 올라 갈 수 록 심하였다. 낙차되는 물의 속도와 급류, 바위와 바위 사이를 방카를 들고 끌면서 역류하는데 우리로서는 도저히 힘든 노력이었다. 올라 갈 수 록 양쪽의 깊은 계곡을 보면서 생각을 했다.

  ‘아, 바로 이곳이 베트남전 영화 <지옥의 묵시록>과 <플래툰>과 <지옥의 묵시록>과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조성모의 뮤직비디오 촬영지>로구나’  

  한참 가다보니 왼쪽에 폭포가 있었다. 흥미진진한 스릴만점의 급류타기는 올라갈 수 록 더욱 더 했다. 정상에 오니 80미터 낙차의 폭포수가 있었다. 중간에 비 바람이 몰아쳐 마침 가지고 간 우산을 쓰고 레프팅을 즐겼다. 

   다시 우리는 방카를 타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가는 길에 비하여 쉬웠다. 물길따라 노를 저으며 잘 조율하면 되었다. 내려오는 길에 아내는 노래를 불렀다. 양쪽으로 높이 가려진 절벽이 성악의 성량 풍부한 음을 더욱 높혀줘 효과를 내었다.  왕복 4.4km의 급류를 타고 2시간여 내려오는 스릴과 즐거움은 이번 필리핀 여행의 백비(白眉)로 뽑히는 것 이었다.

  나룻터에 내려온 우리는 두 사공이 너무 애를 쓰기에 두 사공에게 200페소(한화 6,000원)씩을 팁으로 주었다.  팍상한에서 레프팅을 즐긴 후 마닐라로 돌아오면서 저녁은 한국인이 운영항는 ‘비원’ 음식점에서 샤브샤브와 소주로 하루의 피로를 씻었다.

  인천공항에서 출발 할 때 자리를 우리 부부에게 양보한 경북 상주시 고명환 부부와 마주 앉아 맛난 샤브샤브를 안주삼아 술잔을 주고받는 기분은 이국에서 또 하나의 기쁨이나 추억으로 남는다.  저녁에 마닐라 라마다 호텔에 들어와서는 상주 고명환 부부의 방 1003호 가서 우리 부부와 함께 기타를 치며 음악회를 가졌다. 물론 한 잔의 술을 마시며 두 부부가 함께하는 필리핀 마닐라 이국에서의 분위기는 최고의 즐거움이었다.  음악회를 마치고 1102호 우리방으로 돌아와서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우린 이국에서의 둘째 날 꿈나라로 갔다.

   5. 경찰 캄보이(Con Voy) 누에바에시하로

​ 2b9189f4f2692cbea4ce4e9e539e311a_1596435613_0136.jpg(필리핀 경찰의 캄보이(Con Voy)로 누에바에시하 리잘 마을로 자원봉사를 갔다)

 

  기분 째지는 하루 -6월7일(목)  햇살이 말끔하게 내려쬐는 마닐라의 6월 7일 아침. 우리는 누에바에시하 리잘(Ri zal)마을로 자원봉사를 위하여 갈 채비를 차렸다.  필리핀은 잦은 비로 인하여 건물과 도로 등 도시 전체가 음습해 보인다. 깔끔하다는 인상은 아니다. 특히 비로 인하여 생기는 건물의 이끼와 어두침침한 건물의 벽 등은 이 도시의 음습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도시건축학(City Architectonics, 都市建築學)에서의 으뜸 기본은 도시디자인이다. 획일적이지 않고 부드러운 선(線)과 디자인 색채로 인하여 도시전체의 분위기가 좌우된다.  무덥기는해도 싱그러운 바람을 쐬며 루손섬 북쪽방향으로 버스는 출발하였다. 차창 밖으로 비쳐지는 푸르런 들판은 온통 야자수 나무들이다. 그리고 그 사이 넓은 들녘은 버려둔 채 였다. 잡풀로 무성한 넓은 들판이 아까웠다.  우리나라 같으면 그 들판에 벼를 심든가 옥수수, 보리 등을 재배하거나, 목장용 목초지로 개발하여 경작하련만 필리핀 정부를 그러하지를 않고 있다.그 사이로 간간히 들판에서는 모내기를 하고 한편에서는 수확을 거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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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바 년 3모작이 가능한 자원풍부한 나라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머나먼 필리핀 들판을 지나며 마닐라 현지 가이드 강현우 차장이 웃으며 퀴즈를 낸다.  지루함을 덜기 위하여 가이드 강 차장의 재미있는 익살과 안내를 들으며 가던 중에 강 차장이 말한다. 

 “잠시 후 이면 이곳 누에바에시하 주 정부에서 외국에 까지 자원봉사하러왔다고 주 정부 경찰차가 앞에서 캄보이(Con Voy)해주어요. 다른 차량을 제치고 앞서가는 경찰차를 따라 시원하게 달리는 기분도 괜찮으리라 믿어요.” 

  일행은 박수를 치며 좋아한다.

  “짝짝짝---” “우와, 외국에 와서 이런 대접 처음 받아요. 고마워요!” 
  “우리가 외국 국빈이라도 된 것 같아요.”
  “하하하--- 허허허---” 

  Pulisya 라는 이름을 쓴 경찰 캄보이를 받으며 외국에서의 국빈 대접을 받으며 누에바에시하(Nueva Ecija)에 도착한 우리는 팔라이시티 호텔앞에서 목에 꽃목걸이를 받으며 환영을 받았다. 일행중 상주시에서 온 정운석(鄭雲石)교장 선생님이 환한 미소를 번지며 말한다. 

  “하이구나 기분 째니네 예. 내가 외국에 와 이렇게 환영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데이. 하마 좋데이 좋데이.”
 

   또 옆에 있던 양천구청 작은 거인 김백곤 행정지원국장도 한 마디 거든다.
  

  “아하, 참으로 고맙습니다. 나도 외국에 와서 이런 환영은 처음 받아요. 감사해요. 허허허---”
 

   팔라이시티호텔 앞에서 환영을 받은 일행은 프론트에서 숙소 룸 키를 배정받아 각자 방으로 가서 짐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간단히 씻은 다음 호텔 중앙홀에 모였다.  이날 나는 누에바에시하 팔라이시티호텔 앞에서 의미깊은 분을 한 분 소개를 받았다.

  지난 우리나라 6.25 전쟁 때 필리핀군 장성 신분으로 참전한 80대의 노장군을 만났다. 멀리 우리나라에 와서 피를 흘리며 전쟁에 참여한 그 노고가 고마워 두 손을 잡고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호텔 앞에서 사진을 같이 찍었다.  필리핀은 당시 6.25 전쟁 때 약 1,200명의 군인을 파병하여 터키에 이어 9번째 로 많은 군인을 파견한 혈맹의 형제국가이다. 

2b9189f4f2692cbea4ce4e9e539e311a_1596435649_5222.jpg (6.25 전쟁 때 필리핀군 장성으로 참전한 80대 노장군)

 

  “코리아, 살라맛 보, 살라맛 보 살라맛 보. (감사합니다)” 
 

  필리핀 노 장군의 늠름한 모습을 보면서 미국 맥아더 장군의 어록이 생각났다.

  “노병은 결코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 

  누에바에시하 주 정부의 환영식과 점심식사가 중앙홀에서 열린다. 우리 부부는 이곳 행사장에서 기타연주와 함께 노래를 하는 관계로 다른 일행보다 일찍 중앙홀로 내려갔다. 그래서 연주할 기타 앰프선 연결과 아내의 성악 엠알(MR)시디를 앰프에 장착하였다. 잠시 후 열릴 공연을 위하여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한국과 필리핀 양국가의 대표들의 인사말이 끝나고 랜턴 점등식까지 마쳤다. 이어 필리핀 누에바에시하 고등학교(High School)학생들이 나와 그룹댄스를 추어 우리를 환영했다.

  여기 교육제도는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4년, 대학 4년제로 편성 운영이 되고 있다.  이어서 답례로 한국 대표로 우리 부부가 공연할 차례이다. 먼저 나의 연주곡이 선을 보였다. 미국 밴쳐스악단의 대표적인 연주곡 ‘Pipe Line’이었다. 외국 손님들 앞에서 긴장했는지 완벽하지는 못했어도 관람객들로 부터 칭찬을 많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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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누에바에시아 팔라이시티호텔 중앙무대에서 갖은 김우영 김애경 듀엣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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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 아내 김애경 성악가의 노래 ‘돌아오라 소렌토로’와 ‘시월 어느 멋진 날에’를 선 보였다. 다행이 앰프사정이 좋아 성량 풍부한 아내는 마음껏 기량을 발휘하였다. 3백여명의 관객들로부터 박수와 칭찬을 받았다.

   6. 필리핀 누에바에시하 리잘(Ri zal)마을 자원봉사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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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에바에시하 팔라이시티 호텔에서 공연을 마치고 점심을 먹은 후 우리는 간소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리잘(Ri zal)마을 자원봉사 길을 나섰다. 가는 길에 누에바 에시하 주 정부시청을 들러 시의 현황과 우리 서울 양천구의 현황을 소개하는 순서가 있었다.   

  이곳에서 준비한 간식을 마치고 우리는 리잘(Ri zal)마을을 향하여 갔다.갈 때는 필리핀의 명물 지프니(지프와 포니를 미니버스 형태로 개조한 대중교통)를 타고 갔다. 무더운 날씨 좁은 공간에 앉아 가는 낡은 지프니는 불편하기는 했지만 그런데로 낭만은 있었다.  필리핀은 일본제 차량이 많다. 니산, 혼다, 도요타 등 한국차는 드믄드믄 보였다. 일본은 필리핀의 도로를 만들어주며 차를 구입하도록 했다고 한다. 도로에는 자전거를 개조한 페디갑, 바뀌 3개의 자전거 트라이시클이 많이 다녔다. 또 시내에는 ‘졸립(즐거운 유쾌)’이라는 간판이 많았다.

  이는 햄버거 가계인데 햄버거와 주먹밥을 주어 힛트를 친 필리핀 유명기업이라고 한다.  현지인 노동자 월급은 우리돈으로 30만원, 경찰은 60만원 정도 받는다고 한다. 가장 비싼 커피는 사양고양이 커피란다. 1잔에 5만원 정도 한다. 필리핀 음식은 주로 닭밥과 '파시키톤'이라는 쌀국수가 유명하다. 

  시장 경제단위는 동전과 지폐이다. 동전은 1페소, 5페소, 10페소 단위가 있다. 지폐는 10페소, 20페소, 50페소, 100페소, 200페소, 500페소, 1,000페소로 유통된다. 지폐 500페소에는 구권 뒷면에는 故 아키노 상원의원의 초상화와 한국전 기사가 실려 있다. 17세 때 6.25 한국전쟁에 종군기자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길가 들판에는 모내기를 내는가하면 한편에서는 벼가 익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군데군데 까마바우라는 까만 물소가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까만 물소는 필리핀을 상징하는 소이다. 큰 기관의 입구 양 쪽에 까아만 물소가 동상으로 세워져 있었다. 따라서 필리핀 국민은 까만 물소를 먹지는 않는단다. 대신 흰 소나 누렁소를 먹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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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참 가다가 비포장 둑길에 지프니가 정차 하였다. 그 곳에는 여러명의 주민들이 야생화로 만든 꽃목걸이를 걸어주며 우리를 박수로 환영을 했다. 불이 없는 오지마을 찾아오는 한국인들을 환영하는 것이었다. 꽃목걸이가 목에 감기면서 차갑고 파릇한 냄새로 어린시절 둑길에서 놀며 친구랑 꽃반지를 끼워주던 생각이 났다. 

  우리 일행은 여기에서 다시 까마바우라는 까만소가 끄는 우마차를 타고 마을로 들어갔다. 우마차에는 색종이와 야생화로 얼기설기 만든 줄을 엮어 놓고 둑길 주변에는 현지 원주민들이 웃통을 벗거나 반바지 차림 의상으로 구리빛 얼굴을 한 채 우리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남국의 필리핀 땅 오지에 우리가 있음을 새삼 느끼는 바이다.

  리쟐마을 학교인 ‘SITIO CABIAO ELEM SCHOOL’ 입구에 도착하자 이곳에서도 미리 준비한 꽃목걸이를 걸어주었다. 이로서 목에 매단 환영의 꽃목걸이가 3개나 되었다. 이런 대접은 생애 처음이다. 온통 얼굴이 상기된다. 30여명의 일행은 환대에 어리둥절하여 만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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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무대가 마련된 행사장에서는 환영의 음악이 앰프를 통하여 울려 퍼진다. 마치 초등학교시절 운동회 시작을 알리는 경쾌한 주악이 울려퍼지듯 말이다. 충남 천안에서 간 반인충 전 교육장님과 서울 양천구에서 온 최연숙 회장님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어허, 이거 우리가 너무 국빈급 환대를 받는구먼. 하하하---”
  “그러게 말이예요. 호호호---” 

  마을주민 외곽으로는 경찰과 군인이 권총과 M-16 기관소총을 어깨에 맨 체 상엄한 경비를 서고 있었다. 필리핀은 아직 치안이 불안하여 별도의 경계가 필요한 곳이었다. 특히 한국의 지도자급 귀빈이 방문한다하여 누에바 에시하 주 정부와 군청, 면사무소에서 각별히 신경을 쓴 것 같다. 부족한 우리들에게 이렇게 환대와 각별한 경호까지 해주니 환송하였다. 

  미리 준비된 행사장은 무대와 객석, 앰프시설, 천막 등이 준비되었다. 이 곳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지역이다. 그래서 우리가 태양광 랜턴을 가지고와서이 마을 주민들에게 나누어주는 한편, 마을 입구에 가로등을 설치하게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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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Gple Alllights Village 지원사업 일환으로 갖는 주민환영회는 미리 준비한 식순에 따라 마을대표의 환영사, 한국 GPF Alllights Village 조성락 단장의 답사 그리고 GPF 필리핀지회 추화박사의 축사, 마을 학생들의 편지낭독 등이 이어졌다. 그리고 우리는 자매결연을 맺은 주민들과 함께 짝을 이루어 학교 뒷편에 가서 기념식수를 했다. 'WOO YOUNG KIM'이란 이름이 새겨진 나무에 마을 주민의 꿈과 희망을 담아 함께 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함께 우리는 우정의 사진을 찍었다.

  7. 아름다운 항구도시 필리핀 마닐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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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항구도시 마닐라에 도착하여 시내관광에 나섰다. 먼저 인트라무로스라는 고성을 방문했다. 이 곳은 군사요충지로서 가장 중요했던 산티아고 요새라고 한다. 또 인근에는 필리핀의 국부로 추앙받고 있는 호세리잘의 묘지와 기념비, 리쟐 공원을 방문했다. 마닐라만의 시원한 항구가 가까이 있는 이곳 공원은 많은 시민들이 나들이를 하였다. 

  가까운 마닐라만으로 나가 항구와 주변을 여유있게 구경하였다. 그리고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갔다. 마닐에서 일식과 양식을 잘 한다는 식당 ‘SALSSAKL’라는 일식 식당으로 갔다. 식당은 현지인을 비롯하여 외국인 관광객들로 방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비었다. 이 가운데에는 상당수의 한국인들도 식사를 하기 위하여 접시를 들고 부산하게 다닌다. 

  이 곳은 식사하는 요령이 특이했다. 파란접시로는 일식요리를 담아야 하고, 하얀접시로는 전체 음식을 담고, 노란색 접시로는 현지요리 메뉴를 담아야 한다. 그런데 현지 가이드 강현우 차장으로 부터 쑥 쓰러운 이야기를 들었다. 

   “접시별로 담는 요리가 달라 특이하네요!”

 

   강 차장은 웃으며 말한다. 

   “아니예요. 처음에는 그 규칙이 잘 지켜졌는데 지금은 뒤죽박죽 되었어요.”
   “아니 왜 그럴까요?” 

   “허허허--- 다른 나라 사람들은 접시 색깔별로 요리를 질서있게 잘 담아가는데 우리 한국인들이 오면 파란접시에 현지음식을, 노란접시에 일식을 막무가내로 담아 먹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어요. 저기를 보세요. 저 한국인 아줌마들이 접시 색깔을 구분안하고 마구 담아가는걸 보세요?”
  “아, …… ?” 

  자리에 앉아 식사를 맛나게 하고 있는데 4명의 악기연주가들이 와서 노래를 한다. 우리가 한국인 것을 알고 다가와 ‘노사연 가수’의 ‘만남’을 흥겨웁게 연주를 한다. 잠시 후 우리는 그들에게 얼마간의 팁을 주고 노래를 주문하였다.  

   노래는 필리핀 국민가수 ‘프래디 아길라’의 ‘아낙’이었다. 그러자 그들은 준비가 되었다는 듯이 즉석에서 연주와 노래를 한다. 필리핀 현지에 와서 따갈로어로 직접 들으니 서글픈 노래가 정겹다. 악기는 콘드라베이스와 키타, 작은북 등으로 우리를 즐겁게 하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뿐이 아니라 손님들테이블을 돌며 각국 언어로 노래를 해주었다. 

  고명환 선생과 기념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들은 명랑한 자세로 기꺼이 응해주었다, 고마운 분들이었다. 문득 철학자 ‘마르셀 푸스트’의 여행론이 생각이 났다. 

   “진정한 여행의 발견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 

  식사를 마친 일행은 관세점과 면세점을 들러 쇼핑을 했다. 한 가지 특이할 일은 이곳 면세점은 코피노(Kopino)들이 운영하는 곳이란다. 코피노라는 말에 귀가 번쩍였다. 다문화가정 주제로 장편소설 '코시안(Kosian)' 의 저자로서 직업의식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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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의 라이따이한(한․베트남 2세), 중국의 한궈쓰썽츠(한․중 2세)에 이어 이제는 코피노(Kopino)이다. 코피노는 한국남성과 필리핀 현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2세를 필리핀에서 이르는 말이다. 코리안(Korean)과 필리피노(Filipino)의 합성어이다. 미국이나 외국에 비해 물가와 교육비가 싸고 1대1 영어교육이 가능해 영어 연수지로 각광받고 있는 필리핀으로 한해 어학연수를 떠나는 한국 학생들은 한해에만 4만 명이 달한다고 한다.  

  이중 일부 학생들의 불법적인 탈선은 이미 도를 지나쳐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이미지마저 추락시키고 있다. 가장 큰 탈선의 행위는 불법 성매수이다. 이들 중에 일부는 필리핀 여성들에게 변태적 성행위를 요구할 뿐만 아니라 폭력을 행사하는 등 가학적 행위를 일삼았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필리핀 어학연수 관련 카페에는 어학연수를 다녀온 학생 중 일부가 밤문화라는 코너를 만들어 자신과 사귀거나 성관계를 한 필리핀 여성들의 사진부터 이와 관련된 정보를 올렸다는 것이다. 

  코피노는 한국인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메트로 마닐라 퀘존시에만 1,500명 내외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지만 필리핀 전체적인 현황은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다. 이는 영어를 국어로 사용하는 필리핀을 어학연수 코스로 삼는 한국인들이 많기 때문으로 여기에 국민 대부분이 피임과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 카톨릭 신자인 점도 코피노가 많아진 이유로 꼽힌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목요일이나 금요일 필리핀행 비행기는 거의 만석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태국의 정정이 불안해 필리핀 여행객이 더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관광객의 행선지는 대략 낮에는 골프장, 밤엔 홍등가로 굳어져 있다. 단기 어학 연수생들도 영어를 빨리 배우겠다며 필리핀 여성과 동거하다 자식까지 낳고선 무작정 한국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교민단체 관계자는 필리핀 여성들이 특별히 피임을 요구하지 않고, 가톨릭 영향과 비용 문제로 중절도 하지 않는다며 필리핀을 찾았던 남성들은 필리핀에 자기 2세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추태로 한국인을 보는 필리핀인들의 시선이 날로 싸늘해지고 있다.  필리핀에 거주하는 생활고에 힘들어하는 코피노를 돕는 "코피노사랑나무" 필리핀 비영리 복지법인에서는 망고, 망고스틴, 깔라만시 나무를 심어 농장을 조성하는 사업으로 스스로 자립 할 수 있게 도와주는 단체가 있다고 한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필리핀 일정을 마치면서 그간의 노고를 풀 겸 단체로 맛사지를 받으러 갔다. 한 방에 3명씩 들어가 3박 5일간의 일정으로 찌든 피로를 푹 씻었다. 발끝에서부터 머리까지 맛사지 해주니까 잠이 스르르 들 정도로 시원하다.

  8. 한국 고국의 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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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나그네 김우영 작가)​

  마닐라 시내에서 버스로 필리핀 마닐라 니노이 아키노 공항에 도착하였다. 한국에서 올 때 타고 온 제주항공 7C 2302호 현지시간 밤 23시 55분 출발한다. 니노이 아키노 공항에서 목이 말라 물을 사니 50페소를 달란다. 한국돈 1,500원이다. 비교적 비싼 가격이다.  잠시 기다렸다가 탑승구로 나가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좁은 비행기 좌석에 앉으니 피로하다. 긴장이 풀리니 5일간의 피로가 엄습해오며 스르르 잠이 든다.

  눈이 스르르 잠기며 저녁 때 본 마닐라만 항구의 야자수 너머로 지는 저녁노을이 떠 오른다. 그리고 면세점에서 우리에게 물건을 팔려고 애 쓰는 초롱한 눈매의 어린 코피노 아가씨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 오른다.  그리고 어제 방문한 누에바에시하 리쟐마을의 어린이들 모습이 떠 오른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천진하며 순하게 생긴 아이들, 고단한 삶에 찌들어 기미가 서린 부모의 얼굴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찡하게 돈다. 문득 서양속담이 생각이 난다.  

   “여행은 사람을 순수하게 그러나 강하게 만든다!” 

   “빠알람 바바리(안녕히 계세요)” 
   “살라마 보(감사합니다)
 
   그리고 저녁 때 마닐라 일식집에서 우리에게 노래를 선사하던 악단의 노랫말이 떠오른다. 프래디 아길라의 ‘아낙’이란 노래이다.

              An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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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eddie Aguilar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엄마와 아빠는 꿈이 이루어지는걸 보았지

우리의 꿈이 실현된 것이며

우리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지

넌 우리에겐 너무도 소중한 아이였지

네가 방긋 웃을 때마다 우린 기뻐했고

네가 울 때마다 우린 네곁을 떠나지 않았단다

아들아, 넌 모르겠지

아무리 먼 길도 갈 수 있다는것을

우리가 너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을 위해서는

신에 맹세코 너를 끝까지 돌봐주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한다면 너를 위해서는

죽음도 마다하지 않을거라는것을

계절이 여러번 바뀌고 벌써

많은 세월이 흘러 지나갔구나

시간이 너무도 빨리 지나가 버린거지

이제 너도 어느새 다 자라버렸구나

그런데 무엇이 널 그렇게 변하게 했는지

넌 우리를 떠나고 싶어 하는 것 같구나

큰 소리로 네 마음을 말해 보렴

우리가 너에게 뭘 잘못했는지 말이야

그런 너는, 어느새 나쁜 길로 접어들고 말았구나

아들아, 넌 지금 망설이고 있구나

무엇을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말이야

넌 너무도 외로운거야

네 옆엔 친구 하나 없는거지

아들아, 넌 지금 후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구나

우리가 너의 외로움을 덜어 주련다

네가 가야 하는 곳이 어디 이든지

우리는 항상 문을 열고

너를 기다리고 있단다.
                               (끝)

글쓴이/ 문학평론가  
한글세계화운동연합 대전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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