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해설)자전적 수필집『참된 교육과 삶의 시방서』이 시대의 참 교육자 조충식 교장선생님의 인간학 향기 37년 봉직

김우영 2020-07-29 (수) 17:21 3년전 1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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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대의 참 교육자 공주정명학교

조충식 교장선생님)​

 □ 스위스의 교육 개혁가·교육학자‘페스탈로치를 그리다

  지난 17세기 후기 저 유명한 스위스의 교육 개혁가·교육학자인 ‘페스탈로치(Pestalozzi, Johann Heinrich)’는 프랑스 사상가 ’장자크 루소‘의 영향을 받아 고아·아동 교육에 생애를 바쳤다. 그는 지능·신체·도덕의 조화로운 발달을 교육의 목표로 삼아, 근대 유럽의 교육사조에 큰 영향을 미쳤다.

  페스탈로치는 인생 말년에 스위스에 ‘슈탄스’라는 고아원을 설립, 전쟁고아를 돌보았다. 당시의 유럽 사회의 계층간에 존재하는 불평등을 지적하고 이의 시정은 정당한 교육으로만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즉, 민중에게 바른 지성의 힘을 기르게 하면 민중은 스스로의 힘으로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려는 입장에서 인간학의 이상을 제안 실천하였다.

  이것은 인간에게 내재하는 자발성·자기활동에 의해 가능하다고 해석하고 인격도야의 이념을 구체적으로 펼쳤다. 도덕적 도야의 근원을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과 믿음의 관계에서 찾으면서 생활이 도야한다는 입장을 역설하였다. 전생애를 통하여 온갖 고경(苦境)을 참으면서 언제나 교사로서의 뜻을 굽히지 않고 교육이라는 외길을 걸었던 강한 실천성과, 교육에 의한 인류구제의 염원을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모든 것이 남을 위한 일 이었으며, 스스로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페스탈로치 묘비명에 새겨진 이 말 한 마디는 그의 교육에 대한 모든 것을 단적으로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1. 자전적 수필집『참된 교육과 삶의 시방서』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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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 출신의 이홍열 시인)


d8d34205c0f110245e3ea0ff94193884_1596010941_0598.jpg (충남 공주고등학교 입구)

  충남 공주고등학교를 거쳐 충남대학교를 마치고 학교에 근무를 한 바 있는 평소 존경하는 서울 이홍열 시인으로 부터 ‘작품해설’ 원고청탁을 받고 공주 정명학교 조충식 교장선생님의 자전적 수필집『참된 교육과 삶의 시방서』를 꼼꼼히 읽어 보았다.

 『참된 교육과 삶의 시방서』를 읽으며 위에서 언급한 스위스의 교육 개혁가·교육학자인 ‘페스탈로치’를 생각하였다. 좋은 환경의 교육을 마다하고 ‘슈탄스’ 고아원을 설립, 전쟁고아를 돌보며 당시 유럽 사회의 계층간에 존재하는 불평등을 지적하였다.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높혔던 인간학의 이상을 실천한 일과 조충식 교장선생님의 거룩한 뜻이 시대를 거슬러 맞닿고 있었다.

  충청권의 명문인 공주고등학교 교장직을 스스로 내려놓고 교직 말년을 공립특수학교인 공주정명학교(公州精明學校)에서의 마무리로 값진 37년의 봉직은 조충식 교장선생님의 인간학(人間學)향기 화룡점정(畵龍點睛)이었다.
 
  이 시대의 참 교육자 조충식 교장선생님의 인간학 향기 교단생활은 37년이란 긴 여정에서 리얼리티(Reality)하게 보여준다. 소년 조충식은 지난 1956년 3월 공주시 오곡동(옛 지명 : 공주군 이인면 오곡리 424번지)에서 7남매중 셋째로 태어난다. 이 마을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쌓여 오목한 형태로서 6.25전쟁에는 피난처로 찾아들기도 했다. 읍내를 나가는 버스길로 나가려면 30분은 걸어야 하는 아주 산골오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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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남매 중 위로 누님 2명, 아래로 여동생 3명, 막내 남동생 1명의 다복한 집안이었지만 먹고살기 어려운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다. 불행하게도 바로 밑의 남동생은 어려서 병으로 사망했는데 아직도 어머님이 우시던 모습을 그리워할 정도로 마음이 따뜻한 소년의 기억으로 자리한다.

  마을 울타리 옆집에 사는 친척 아저씨가 조충식(趙忠植. 나라 조, 충성 충, 심을 식)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훗날 나라의 교육을 맡을 동량(棟梁)인재임을 미리 알아본 것이다.

  마을의 집 앞 100년이 넘은 큰 은행나무가 있어 여름이면 그늘이 좋아 동네 어른, 아이들 모인 곳에서 뛰고 놀던 소년 조충식은 아름다운 자연풍경과 따스한 인간학 향기를 배우며 자랐다.

  공주고등학교 2학년 때 공군사관학교 모집에 응시 합격하여 군대경력을 포함하면 41년 5개월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국가에 봉직한 이름따라 충식(忠植)으로 살아온 것이다.

  모범생이었던 소년은 하루는 친구들 꼬임에 빠져 학교를 가지 않고 토굴에서 하루 종일 땡땡이치며 마루매기놀이도 했었다. 어느 겨울날 날씨가 추워 마른 솔잎을 묶어 불을 붙여서 달리면 좀 따뜻하다. 불이 붙은 솔잎이 떨어져 어느 집 산소를 태웠던 일도 있었다. 소방서에 신고가 들어가면 벌금을 물까 봐 친구 부모님이 짚단을 잘라 덮었던 일들은 훗날 사회생활에서 사리분별하는 인물로 자라는데 밑불이 되었다.

  충남 공주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4월 고사에서 평균 10점을 얻어 전 달보다 올라 진보상을 타게 되었다. 그 시절에는 학교 매점에서 모든 학용품과 빵을 팔아서 남는 이익금으로 노트로 상품을 받는 우등생이었다.

  그 뒤 부터는 학업성적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되어 마지막 3학년 2학기 때에는 우수반에 들어갈 실력을 갖춘다. 고등학교 입학시험이 120등 이내 들어 7반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는 반장이 되고 학도호국단에 편성 임명직 중대장이 되고, 학년 대표와 학회장에 선출되어 리더쉽을 배운다. 그때 논문을 쓰고 개구리 무덤과 위령탑을 세워주던 젊은 날의 초상에 추억들은 그의 산체험이었다.

  2. 공군학사장교를 거쳐 충남 공주 정안중학교 교단에 첫 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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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국토방위를 위하여 대전에 있는 공군기술고등학교에서 복무를 하면 교사경력으로 인정을 해준다는 정보를 듣고 대학을 졸업을 한 그 해 3월 7일, 공군학사장교에 입교하게 된다. 군대생활 훈련 기간 5개월 포함하여 4년 1개월만인 1983년 3월 31일자로 영예의 제대를 한다.

  공군제대 후에 첫 발령지로 충남 공주 정안중학교 교단에서 3학년 처음 담임을 맡은 해 가을 10월 28일, 드디어 결혼을 하게 된다. 즉, 쉴 틈이 없이 열심히 스스로 노력하여 자신의 삶의 둥지를 튼 셈이다.

  30대 젊은 나이에 교단에 소신껏 장학학업에 전력하였는데 우수한 실적으로 평가를 받아 교육청 단위로 선진지 견학을 다녀올 수 있었고, 신청도 하지 않았는데도 유럽 5개국 방문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진 일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공주 이인중학교에 3년간 근무하면서 교감연수 대상자로 선정 되었다. 그 당시 농어촌 점수가 없이 공주지역 중등교사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교감 첫 발령은 천안두정중학교이었다. 그곳에서 교육과정협의회 등으로 교직에 충실하였다. 이 사이에 어머님이 편찮으시어 대전을지대병원을 종합검진결과 췌장암으로 판정이 나왔고 79세 연세로 결국 수술도 어려워 약 5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셨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라고 회억을 한다.

  다시 ㅓ서산을 거쳐 홍성 광천제일고등학교로 교감 발령을 받았다. 현지에서 노력하던중에 1년만에 고향 공주 반포중학교로 발령을 받았고 이어 공주여자중학교로 옮겨 고향 공주교육진흥에 애를 쓴다. 이 무렵 복도에서 만나는 여학생들의 평가이다. 비록 사춘기 여학생들이지만 인간은 칭찬을 먹고 사는 동물이라고 하는데 실감이 났다고 한다.

  “다른 교감선생님은 참견이 많으시고 나쁜 것을 지적을 많이 하시는데 조충식 교감 선생님은 칭찬을 많이 하시어 우리들이 힘이 납니다.”

  학교에서의 다문화교육은 미래 위한 투자였다고 한다. 교내에서 학생의 괴롭힘으로 인한 학교폭력자치위원회를 열어야 하는 상황이 많았다. 교감이 학폭자치위원장인데 쉽게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당시 피해를 입은 다문화가정 학생이 있었다. 엄마가 필리핀인인데 언어는 간신히 소통은 되는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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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간 문화의 차이가 이렇게 큰가를 새삼 느끼었다고 한다. 공주여자중학교에서는 당시 1,000여 명 학생 중에 다문화가정이 몇 명 있었다. 통계상으로는 2020년 현재 우리나라 체류 외국인이 200만 명을 넘고 있다고 한다. 공장이 많은 지역이나 힘든 노동일을 하는 곳은 외국인이 없는 곳이 없다. 따라서 조충식 교감 선생님은 남 다르게 다문화교육에 열성을 띠고 노력한다.

  국내 거주 다문화가족 200만 명 시대를 맞아 제노포비아(Xeno Phobia. 이방인 기피증)를 막고 건강한 학교의 다문화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단일민족인 한국인 특유의 제노포비아 확산의 주요 원인으로 다문화가족의 범죄의 증가를 꼽았다. ‘외국인은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주범이므로 차별해도 된다’는 그릇된 인식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다문화가정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교육당국이 세심하고 전문적인 지원정책을 강구하지 못하고 있어 문제라며 아쉬워했다.

  3. 모교 공주고등학교 교장 이후 정명학교 교장으로서 봉사의 보람

  조충식 교감은 청남중학교 교장승진 발령을 받는다. 8월 17일 교감과 행정실장이 청남중학교에 자료를 가지고 방문했다. 다시 모교인 공주고등학교로 발령을 받은 다음 해 2월 좋은 소식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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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NASA 우주도시 설계대회 디비니티 대상 수상 학생과 조충식 교장 선생님)

  미국 NASA에서 주관한 우주도시 설계대회에서 과학영재고와 민족사관고 학생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우주항공 동아리 팀 디비니티를 만들어 대상을 수상한 것이다. 역시 공주고등학교 학생들은 저력이 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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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장 부임 후 학교 담장공사와 조경공사를 추진했다. 또한 야구장과 운동장 현대화 사업을 했다. 야구장이 마사토로 되어 있어 비가 오면 진흙탕이고 겨울이면 얼지 않게 소금을 대형주머니로 7-8가마 뿌리곤 하여 여파가 운동장 주변 나무들이 죽어갔다.

  공주고등학교에서 4년여 근무하다가 정년을 앞두고 공립특수학교인 공주정명학교(公州精明學校)전근을 자원했다. 다른 교장들은 임기 말기에 더 큰 학교, 더 좋은 자리를 고집하는데 반하여 조충식 교장선생님은 뜻한 바 있어 교직 37년 임기말에 장애인들이 있는 정명학교 교장을 자원한다. 마치 스위스의 교육자 페스탈로치가 말년에 ‘슈탄스’라는 고아원을 설립하여 사회적 약자를 돌보듯이 말이다. 이를 보고 주변의 10명중에 7∼8명이 걱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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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정명학교 전경)

  “조 교장 그 왜 그 어려운 학교를 가나요?”

  “장애인학교에 근무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조충식 교장 선생님은 다행히 예전에 대구대학교에서 특수교육 관련  연수를 받았다. 즉, 앞일을 내다보는 선견지명이 있었다는 얘기이다. 앞으로 특수교육이 중요해질 것 같아 마음먹고 장애인분야에 관심을 갖고 연수를 자원했다. 조충식 교장 선생님은 이렇게 지난 일을 회억한다.

  “대구대학교 특수교육이 여기까지 오려고 연결 되었는지? 나의 운명인가 보다 생각했다. 호적이 줄어 2년을 친구들보다 더 하게 되는데 덤으로 얻은 2년 여 동안 특수교육을 경험 해보게 되어 더 없는 영광이다!”

  문득, 지난 18세기 미국의 강철왕 ‘카네기’ 인간처세학에서 한 말이 생각이 난다.

  “운명이 너에게 레몬을 주거들랑 그걸로 레몬수를 만들어 마셔라.”

  위대한 사람은 시간을 창조해가고 범상한 사람은 시간에 실려 간다. 그러나 한가한 사람은 시간과 마주 서 본 사람이라고 한다. 어둠을 불평하기보다는 단 한 자국의 촛불이라도 밝히고 사는 것이 낫다. 현실을 요리하려면 현실에 굴종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18세기 영국의 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말했다.

  “인류가 역경을 극복해가며 이룩한 문명의 역사를 도전(challenge)과 응전(response)이다!”

  정명학교는 매년 12월에 ‘정명예술제’가 개최된다. 이때 조충식 교장은 전임 교장선생님 6명을 초청을 하였다. 모두 참석을 하고 예술제 끝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예술제에 참석한 전임 교장선생님들은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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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정명예술제 행사)


  “오래 근무했던 교장 선생님 중에 이렇게 우리를 초대하고 성황리에 운영한 역사가 없었습니다?”

  “교장 선생님 고맙습니다.”

  또한 ‘예하지마을’ 명예교사를 초빙하여 학급별로 분할하여 팻말을 세우고 창의적으로 각종 농작물을 심어 예쁘게 자라는 모습과 정자를 세워 쉼터를 만들어 야외수업 겸 농업체험 쉼터를 만들어 자주 오는 모습을 보고 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한다. 지적장애를 가진 학생이 대다수인 정명학교는 너무도 어려운 학생들도 간혹 있지만 아침 출근하는 모습을 보면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친구들이었다. 자폐를 가진 ‘정환’이는 기억력이 또렷하다고 한다. 꼭 만날 때 마다 이렇게 말한다.

  “안녕하세요. 조충식 교장선생님!”

  “음, 정환 학생 잘 있었지?”

  정명학교 로고는 ‘바른그루’이다. 학교의 1호 기업 바른그루 카페가 전국 특수학교 중에서 최초로 만들어졌는데 그 이유는 특수교사들이 학생들 때문에 각 반 교실에서 쉬는 시간에도 학생들 관리 때문에 다른 교사와 만나지 못하는 문화 때문이다. 즉, 이런 제약을 타파하기 위해 교내 카페를 만들어서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조충식  교장선생님 부임 후 사비로 커피와 음료를 제공해보니 직원들이 아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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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충식 교장 선생님의 정명학교를 운영하며 느낀 것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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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부족한 상황에서 점차 성숙해진다. 육체적으로 성장을 하고 지식을 축적하면서 판단력이 길러지고 인간성을 형성하여 원만한 사회생활을 하게 된다. 이런 인간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교육이 아닌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교육을 통해 희망을 갖게 하고 발전을 시키고자 노력한다.”

  미국의 18세기 작가이자 사회운동가였던 장애인 헬렌캘러(Helen Keller) 는 이렇게 말했다.

  “모름지기 비관주의자가 별들의 비밀을 알아낸 적이 있던가? 무인도를 향해 배 저어 간 적이 있던가? 인간정신의 새 출구를 열었던 적이 있던가? 이는 오로지 장애를 가진 자들이 새 시대를 열었다.”

  장미에 가시가 왜 있냐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가시에도 장미가 핀다는 걸 감사해야 한다. 장애는 예술(art)이며, 천재적 삶의 방식이다. 따라서 장애는 불편해도 불행은 아니다. 문제는 사회현상을 비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정신적 장애가 더 큰 장애라는 사실이었다. 장애란 뛰어 넘으라고 있는 것이지, 걸려 엎어지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불운(不運)과 호운(好運)의 몇 배의 노력으로 극복하고, 적극적으로 성장에 활용해서 다음의 불운에도 끄떡없는 힘을 비축해야 한다.  

  누구라도 지금 당장 장애우가 될 수 있다. 불의의 사고나, 질병으로 생기는 장애가 바로 그것이다. 장애는 유전, 또는 선천적이기보다 후천적인 요소에 의해서 상당수 발생한다고 한다. 다음은 조충식 교장선생님의 교육경영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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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로 생산 기술을 익히는 교육이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단순노동이 되면 금방 지쳐버려 여러가지 부작용이 온다. 자기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자꾸만 떨어지는 것이다.

  둘째로 철학적인 교육이다.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을 교육목표로 삼는 것이다. 하지만 많이 알수록 사회발전에 기여하지 못하고 더 못 된 방향으로 빗나갈 수도 있다.

 

 셋째는 인격적 교육 즉, 전인교육이다. 사회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인간성 교육은 퇴보하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고 4가지 ‘사’가 중요한 교육이다.
 
  첫 번째는 ‘인사’이다. 서로가 처음 만날 때 인사를 나눈다. 겸손하고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는 일은 타인과 원만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첫 번째 행동이다. 인사는 부담없는 마음의 인사요, 친근감의 메신저이다.

  두 번째는 ‘찬사(칭찬)’이다. 상대방의 좋은 점, 우수한 점을 인정하고 칭찬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서로 만족하고 기뻐할 수 있으니 이 이상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감사를 모르는 사람은 불평과 불만의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세 번째는 ‘감사’이다. 감사하는 마음은 부드럽고 여유 있는 마음에서 나온다. 많고 적은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을 베푼다 할지라도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추가한다면 ‘봉사’이다. 섬기는 일은 섬김을 받는 일보다 더 자유로우며 기쁨과 행복 사이를 왕래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모든 사람들이 울고 그대만은 미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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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를 종종 메스컴을 통하여 어떤 불미스런 일로 인하여 지탄을 받는 교육자가 있어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성실하게 교단을 지키는 참 선생님, 사회적으로도 본 받을만한 분, 어느 것 하나 버릴게 없는 무결점의 이 시대 마지막 교단의 천상천하(天上天下)영원한 교육자 조충식의 인간학 향기를 접 할 수 있어 행복한 오늘이다.

 

  될성싶은 사람은 어린시절부터 안다고 했던가? 지난 충남 공주시 오곡동의 어린시절 옆집에 사는 친척 아저씨가 조충식(趙忠植. 나라 조, 충성 충, 심을 식)이라고 이름을 지어준 일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나라의 동량으로 사람을 인간답게 참 사람으로 만드는 교육자 길을 가게 한 충식(忠植)이란 이름은 일찍이 인물출연을 예고한 시그널이었다,

  흔히 교직은 먹고사는 직업이라고 하지 않고 성직(聖職) 천직(天職)으로 비유하고 있다. 이 말은 사람이 사람을 가르치는 중요한 일이며 그 위대성이 뛰어난 탓 일 게다.

  조충식 교장선생님은 그야말로 성직이나 천직에 비유해도 부족함이 없는 분이다. 교육현장의 리얼리즘(Realism)을 바탕으로 하여 자신이 살아온 삶의 투명하게 메타포(Metaphor)처리한 자전적 수필집『참된 교육과 삶의 시방서』는 참교육 인간학으로 승화한 휴머니즘의(Humaqnism)승리이다.

  “오, 이 시대의 마지막 영원한 인간학의 교육적 산물인 조충식 교장선생님. 오래오래 그 위대한 교육적 향기를 머금고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그대는  울고 모든 사람들은 기뻐하였으리라. 그리하여 그대가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모든 사람들이 울고 그대만은 만면에 미소를 지울 수 있으리라! 

글쓴이/  d8d34205c0f110245e3ea0ff94193884_1596011816_4469.jpg

문학박사 김우영 작가
(아프리카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렘 외교대학 한국어학과 교수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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