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 아프리카 탄자니아 91,000실링의 행복, 낯선 대륙 나그네의 비애

김우영 2019-12-09 (월) 15:42 4년전 1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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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영 한국어 문학박사
 (아프리카 탄자니아 국립 외교대학 교수)

                                 

 □ 아프리카 동인도양의 싱그러운 하루가 열리고

 

  오늘은 12월 8일 일요일. 아프리카 동인도양에서 뜬 햇살이 숙소 앞 나뭇가지 사이로 힘차게 떠오른다. 참새 떼와 까마귀들이 저 마다 새 아침을 맞아 지저귀며 싱그러운 소리로 하루를 열고 있다. 늘 아침이면 숙소 문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있는 아프리카 야생 고양이 '후추'가 밥을 달란다. 쏘세지와 식빵을 주니 잘 먹는다. 새끼를 밴지 1달이 지났다. 조만간 분만 할 예정이니 먹이를 예전보다 더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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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아프리카 탄자니아 계절은 봄날. 봄이라고 하지만 1년 내내 낮에는 30도 밤에는 습도가 후덥지근한 열대성기후이다. 한국과 같은 30도이지만 이곳은 남극 적도 근처라서 가마솥 더위로 무덥다. 태양도 한국보다 몇 배 뜨거워 자리에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주르륵 흐른다.

 

  직사광선을 피하기 위하여 썬그림을 바르고 있는데 저만치 새끼 도마뱀이 쪼르륵 벽을 타고 이동한다. 빠르게 다가가 에프킬러를 뿌렸다. 그러자 쏜살같이 어디론지 사라져 버린다. 잠시 후 도마뱀이 에프킬러에 취하여 비틀거리며 바닥을 긴다.

 

   1. 테메케(Temeke)시장의 캉가(Kanga)와 키텡게(Kite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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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숙소에서 3km정도 거리에 있는 '테메케(Temeke)시장 나들이'를 간다. 이곳 시장물건을 사는데 혹시 지난번처럼 바가지요금의 어려움을 예상하고 한국어를 공부하는 학생과 같이 가기로 약속했으나 연락두절로 결렬되었다. 이 나라 사람들의 약속에 대한 신의가 없음을 다시 실감을 했다.

 

 지난주 테메케 시장에 갔다가 탄자니아 전통옷감을 파는 가게를 지나다가 보았는데 가족 생각이 났다. 아내와 딸, 며느리에게 언제 옷을 사주었던가? 기억이 없다. 가장으로서 따스하게 보듬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또한 위로 누나 두 분과 여동생 둘, 형수씨와 제수씨가 있는데 한 번이라도 옷을 사준 적이 있는가? 과연 형제로서 우애(友愛)가 있었는지 스스로 못남을 자책했다.

  문득 미국의 교육자 '워싱턴 어빙'의 말이 생각난다.

  "내 집이 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보금자리라는 인상을 가족에게 줄 수 있는 어버이는 훌륭한 부모이다. 가족이 자기 집을 따뜻한 곳으로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어버이의 잘못이며, 부족함이 있다는 것이다."

  숙소에서 테메케 시장까지는 3km정도인데 평소 걷는 것을 좋아하여 주변을 구경하면서 걷기로 했다. 그러나 이곳은 한국처럼 꽃길이 있고 단정하게 정리된 도로가 아니다. 오가는 대형트럭의 먼지와 매연, 수시로 울리는 정적으로 소란스럽고, 도로 아래 하천은 까아만 폐수와 희뿌연 생활용수로 지저분하다. 어수선한 주변 환경과 다양한 검은 민족들의 군상을 보면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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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거리에는 바나나를 파는 사람, 구걸하는 걸인들, 색이 변한 타이어를 걸어 논 가게, 간이식당 등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테메케 시장에 들어서자 지난번 눈여겨 본 전통옷감을 파는 가게가 보인다.

 

  아프리카의 전통옷감 캉가(Kanga)와 키텡게(Kitenge)는 우리나라 한복과 같은 전통옷으로서 화려한 색깔과 문양이 특징이다. 캉가는 원래 반투족의 전통옷이다. 탄자니아 부족의 95%가 반투족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캉가와 키텡게 전통옷이 자리를 잡았다. 캉가는 현란한 열대의 문양과 색감을 가지고 있다. 주로 여자들이 두르고 다니는 옷이다. 키텡게 보다는 조금 더 얇은 편이고 허리나 가슴 쪽에 묶어서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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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낮에 더울 땐 얼굴 가리개로 쓰고, 아이를 업을 때 보자기로 쓰고, 잔디밭에 앉을 때는 돗자리로 깔고 앉으며, 이슬람 문화영향으로 얼굴을 가리기는 등 아주 다양한 용도로 쓰인다. 캉가는 무늬를 염색하고 아랫단 부분에 스와힐리어 속담이나 여러가지 문구들을 채색한다. 키텡게도 반투족의 전통옷인데 캉가보다 값이 비싸고 조금 더 고급스럽다. 두께는 조금 더 두껍고, 무늬는 대부분 크고 색깔이 다양하여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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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게에서 홈드레스와 옷감을 골라 할인하여 90,000실링(韓貨 45,500원)에 샀다. 걸어오면서 시장바닥에서 좌판 고기를 먹음직스럽게 썰어놓고 팔고 있었다. 1,000실링을 주고 샀다. 예전 어렸을 때 충청도 서천장에 배고파 찾으면 난전에서 사과장사를 하시던 어머니가 국밥집에 데려가 밥을 사줄 때 썰어주던 뭉툭한 고기와 닮았다. 어머니 생각을 하며 고기를 비닐백에 넣었다.

  2. 아프리카 대륙을 방황하는 낯선 나그네

  숙소에 올 때도 걸으려고 걷다 생각하니 더위에 시장에서 구입한 고기가 변 할 것 같아 지나는 바자지(Bajaji)를 세웠다.

  "저기 가까운 곳에 가니까 2,000실링에 갑시다?"
  
  20대 흑인 청년은 말한다.

  "3,000실링 주세요?"

  실랑이 끝에 2,000실링에 흥정하고 출발했다. 이 나라는 노선별 버스와 우버택시(Uber. 한국의 카카오 택시)를 제외한 일반택시나 바자지(Bajaji 삼륜차), 삐끼삐끼(Pikpiki, 오토바이)는 승차시 흥정을 해야지 그냥 타면 바가지를 쓰기 쉽다. 20대 젊은 흑인이 운전하는 바자지를 타고 숙소로 가는데 지름길로 간다. 길을 잘못 간 것인지 다시 지름길을 돌아나오며 숙소까지 가려면 5,000실링을 달라며 운행을 정지한다. 처음 약속을 바꾸어 길을 가다가 당초 금액보다 1.5배를 달라고 했다. 맘이 상하여 2,000실링주고 바자지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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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넓은 길을 대형트럭과 달라달라 버스(Daladala Basi)가 휙— 휙—먼지를 날리며 달린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부산하게 떠들며 지나간다. 테메케 가게에서 산 탕가옷감 비닐백을 들고 걷는데 낯선 대륙 나그네로서 비애감을 느꼈다. 상심(傷心)하여 걷는 나그네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길거리 흑인들이 말을 건다.

  "헬로우, 지나? 지나?"
 
  이 나라에는 오래 전부터 중국인들이 많이 들어와 있다. 따라서 같은 동양인을 중국인으로 알고 '지나(Jina, China의 준말)'라고 부른다. 그럴 때 마다 손사레를 치며 대답한다.

  "No? Korea Kusini!"

  아내와 딸, 형제들에게 선물하기 위해서 큰 맘 먹고 구입한 캉가옷감이 든 백을 들고 허탈한 맘으로 터덕터덕 걸었다. 가족에 대한 행복이 아프리카 낯선 대륙을 떠도는 나그네의 비애감으로 바뀌고 있었다.

  "한국 집에 차가 두 대나 있는데? 내가 이역만리(異域萬里) 먼 아프리카에 와서 이게 무슨 고생이람……?"

  서글픈 생각이 든다. 아내와 딸, 아들, 형제들의 모습이 눈물에 섞여 보인다.

  '그래 참자, 참아. 아암, 참아야지?'

  눈에 고인 눈물과 더운 날씨에 흘러내린 땀이 범벅되어 손수건으로 닦으며 터덕터덕 낯선 거리를 걸었다. 지나가는 바자지 한 대가 다가와 선다. 더운날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힘없이 걷는 외국인이 처량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숙소 위치를 말하고, 2천 실링에 흥정하자 30대로 보이는 흑인 운전수는 두 말도 안하고 타란다.

  '아까 20대 운전수는 처음 2,000실링에 흥정하고 중간에 바자지를 세우고 5,000실링 달란다. 그리고 운행을 정지시켰는데? 그런데 30대 이 흑인 운전수는 바자지를 스스로 세우고 타라고 하는 착한 분도 있구나!'

  숙소 앞 도착하여 운전수에게 고마워 1,000실링을 얹어 3,000실링을 주니 빙그레 웃는다. 고맙다고 엄치척을 해주었다.

  "Wewe Best Driver!(당신 멋진 운전수!)"
  "Chikamoo Asante!(어르신 고맙습니다!)"

  서로 주고받은 덕담속에 오늘 테메케 시장나들이에서 상한 마음이 눈처럼 스르르 녹는 듯 했다.

  3. 91,000실링의 행복, 낯선 대륙 나그네의 비애감

  숙소를 향하여 걷는데 아침에 빨아놓은 이불보 빨래가 숙소 앞 빨래줄에 안보였다? 누가 가져갔나? 하고 깜짝 놀라며 옆을 보았다. 빨래줄 아래에 다른 이불보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숙소 청소하는 분이 아침에 빨아 널은 이불보를 가져가고, 세탁하여 잘 접어 새 이불보를 놓고 갔구나! 이런 고마운 데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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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소 앞에는 아프리카 야생 고양이 '후추'가 밥을 달라며 '야오옹— 야오옹--' 옹알 거린다. 덥고 배가 고프지만 낯선 나그네를 기다린 후추가 안스러워 먼저 밥을 주었다. 배가 고팠던지 눈 깜짝할 사이에 다 먹어 치운다.

  숙소에 들어서며 노트북 저장된 음악 '고향의 봄' 가곡을 크게 틀고는 세탁실로 갔다. 온몸이 땀으로 얼룩지고 옷에 먼지가 묻어 빨래부터 했다. 낯선 대륙을 헤메인 나그네 비애감을 털어내듯 옷을 빡—빡— 문질렀다. 눈물을 한 움큼 뿌리며 빨래를 거칠게 문지르다보니 손 등이 아팠다. 빨래가 무슨 죄가 있으며, 손 등이 무슨 죄가 있다고?

  배가 고팠다. 시장에서 사 온 고기와 얼마 전 다르에스살렘 한국식당에서 사 온 김치를 섞어 1인용 전기밥솥에 찌개를 끓이기 시작했다. 지난날 한국에서 직장생활 할 때 퇴근하며 돼지고기를 사오면 아내는 김치찌개를 맛있게 끓여주었다. 얼큰하고 매콤한 김치찌개에 막걸리를 한 사발 마시면 그날 하루 일과의 어려움이 눈 녹듯 사라지곤 했다.

  잠시 고국시절을 생각하는 사이 전기밥솥에서 김치찌개가 끓고 있었다. 어제 남은 찬밥에 늦은 식사를 했다. 김치찌개 속 고기를 한 점 건져 먹었더니 맛이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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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이것은 돼지고기가 아니고 양고기인데? 아, 이 나라는 종교적인 문제로 돼지고기를 안팔지? 양고기에 김치찌개가 맛이 좀 이상하네. 허허허---"

  식사를 마치고 더위와 맘 상함이 겹쳐, 심신(心身)이 녹녹하여 침대에 털썩하고 누웠다. 노트북에서 흘러나오는 '고향의 봄' 노랫소리에 가족 모습이 방안 천장에 오버랩(Overlap)된다. 아프리카 탄자니아 테메케 시장에  '91,000실링의 행복, 대륙 낯선 나그네의 비애감'이 교차된다. 문득 스위스의 교육자 '요한 페스탈로치(Johann Heinrich)의 '가정의 웃음'이란 말이 떠오르면서 스르르 잠이 온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기쁨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 가장 빛나는 기쁨은 가정의 웃음이다. 그 다음의 기쁨은 자식을 보는 부모들의 즐거움인데, 이 두 가지의 기쁨은 사람의 가장 성스러운 즐거움이다."

  고국의 아내와 두 딸과 며느리가 캉가옷을 입고 거울 앞에서 빙그르 돌며 좋아한다.

  "아프리카 캉가옷도 다 사오시고, 아빠가 뒤늦게 철 드셨네요. 참, 희안한 일이네요?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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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서울에 사시는 연세를 드신 누님 두 분과 형수님이 옷을 입고 좋아하시며 입가에 미소를 피우신다.

  "하이고, 동생 하나 잘 두어 꿈에도 생각도 못하던 아프리카 캉가옷을 다 입어보네! 호호호---"

  또한 경기도 수원 여동생과 충남 예산의 막내 여동생도 입가에 손을 대며 좋아한다.

  "아프리카 박사님 오빠 덕분에 평생 구경도 못하던 킹가옷을 다 입어보네요? 고마워요. 우리집 대장 오빠 사랑해요!"

  그러면서 수원 여동생이 한 마디 덧붙인다

  "오빠, 그리움이 사무치면 향수병이 되어요? 고국 일 다 잊고 그곳에 적응하고 즐기다 오세요!"

  동생은 언제나 현명하고 현실을 지혜롭게 판단하는 예리함이 있다. 그간 같이 자라면서 종 종 잘못가는 길이 있으면 바로잡아주곤 했다. 맞는 말이다. 고국의 가족과 산천은 뒤로하고 아프리카 탄자니아 생활에 적응해야 되는데 그게 잘 안된다.

  "본래, 인정많은 다정(多情)한 오빠라서 미안하다!"

  이 대목에서 잘 읊조리는 지난 고려시대 문신 이조년(李兆年)시인이 쓴 시 다정가(多情歌)가 떠오른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 이 삼경(三庚) 인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아라마는
  다정(多情)도 병(病)인 양하여 잠 못 드러 하노라!"

  (배꽃에 하얀 달이 비추고 은하수가 자정을 알리는 때에, 한 가지의 봄날의 마음을 두견새가 알까마는 정이 많은 것도 병인 양하여 잠을 이루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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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그간 사업한다고 고생을 많이한 대전 서구에 사는 제수씨가 이렇게 말한다.

  "호호호 ---세상 오래 살아야 겠네요. 시숙 어른 덕분에 아프리카 캉가옷도 다 입어보고 말이예요!"

  남동생이 맞장구를 친다.

  "그려, 우리 건강하여 100살까지 살더라구! 하하하---"

  □ '고향의 봄'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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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 꽃 살구 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꽃 동네 새 동네

나의 옛 고향 

파란 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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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12월 8일 아프리카 탄자니아 봄날

  *이어지는 아프리카 주제의 글은 내년 귀국 후 종합적으로 재구성하여 가칭 'Nakupenda Tanzania'라는 제목으로 Koica 출판부에서 소설책(1,000매)으로 재탄생될 예정입니다. 변함없는 지도편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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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김우영은 2019. 12월 현재 25편 200자 원고지 500매를 써 소설책 농사 반은 지었습니다.

  *오늘의 명언
  가정에서 마음이 평화로우면 어느 마을에 가서도 축제처럼 즐거운 일들을 발견한다. (인도속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