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수 수필] 우리 모두가 가을시인이 되자

여혜승 2019-09-30 (월) 19:05 4년전 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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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수 시인

 

 

정을 주고 정을 받으며 살아가는 우리네 삶, 정으로 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더욱이 가을철에는 단풍처럼 물들어가는 우리네 인생길이 생각난다. 때로는 쓸쓸함과 외로움에 빠져 고독감을 느낄 때가 있다.

 

정이란 무엇일까? / 받는 걸까 / 주는 걸까 / 받을 땐 꿈속 / 같고 줄 때는 안타까워 . . . 라는 노랫말처럼 精에 대한 감정표현은 부지기다. 어쩌면 우리네 삶은 정을 위해 살아간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지난 연휴는 그런 정들이 움직이는 삶의 현장을 접했다. 경남 산청의 동의보감 촌에서 1박 2일로 부부동반으로 건강체험을 즐기며 정을 익혀가는 그들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들은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50년 지기로 살아온 모임이었다. 빛난다는 뜻을 지닌 싸인회라는 명칭의 모임으로 대단한 정을 익히며 사는 조직이었다.

 

무엇보다도 인생가을을 맞이한 사람들로써 한마디의 말에서부터 정이 익어가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다시 말해 가을을 맞이한 이들은 모두가 시인이었다. 하얗게 피어난 구절초와 코스모스의 하늘거림을 보고 한 구절의 시를 쓰는 가을시인이었다.

 

푸르고 높아만 가는 가을하늘아래 펼쳐진 갖가지의 형상들은 어느 것 하나도 버릴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가을을 연상케 하는 단풍잎과 낙엽은 아름답다 못해 쓸쓸함까지 내 몰고 있지 않는가.

 

단풍구경을 떠난 사람들의 행렬에서 자연의 섭리를 뒤척이듯 인생살이의 뒷모습은 언제나 쓸쓸함과 외로움이 상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이 가을에는 가는 곳마다 축제물결로 일렁인다. 축제분위가 고조되고 절정에 이른 뒤의 허전함은 한 켠의 가슴을 잃어버린 듯하다.

 

밀물처럼 밀려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축제장에서 스산한 바람이 불 때면 더욱 더 공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계절감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인생가을에 다가서서 바라보는 사람들에 심정은 공허함보다도 더욱 짙은 고독감에 빠지지 않을까 싶다.

 

필자의 거주지는 전남 낙안읍성 읍성안길 23에 자리한 시인의 집이다. 그래서인지, 축제현장분위기와 축제장에서 일어난 별난 일들을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축제기간이 아니더라도 많은 인파가 몰려왔다가 저녁이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그 광경을 많이도 보아왔다.

 

참! 사람의 마음은 묘하기도 하다.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들어 왁자지껄 시끄러울 때는 고즈넉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원하고, 고즈넉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찾아오면 금방 쓸쓸함과 고독감에 빠지는 사람에 심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자발이 없다.

 

낙안읍성시인의 집, 뜰에는 다복을 기원하는 석류나무를 비롯해 도라지, 무늬 둥굴레, 상사화, 어성초 등 수많은 야생화들이 자라고 있다. 또 초가집 벽면과 공간에는 시화들이 전시돼 있어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해 주는 상시갤러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대문 밖 돌담골목 길과 연못에는 홍련과 백련 그리고 수련과 어리연 등이 꽃등처럼 피어 있다. 때로는 새색시처럼 수줍은 듯 피어나고 때로는 자상한 어머니처럼 포근하게 피어난다.

 

그러나 황혼녘이면 썰물처럼 빠져나간 사람의 발길이 끊기고 연꽃의 향연도 막을 내린다. 굴뚝에서 스몰스몰 피어나는 연기의 자태에서 아늑하고 포근한 고향집 향수를 맛보고 어둠이 내리는 밤이 찾아오면 마음 한구석은 텅 빈 주머니처럼 허전하다.

 

이 가을에는 안 쓰고는 못 베길 그 어떤 압박감에 얽매여 더욱 더 고독감에 빠진다. 어쨌든 이 가을에는 맑고 높아진 가을하늘아래 시인의 마음그릇처럼 산도 바다도 하늘까지도 담을 수 있는 커다란 그릇이 되자.

 

시인의 눈은 해맑다

시인의 귀는 하나다

시인의 입은 반이다

시인의 가슴은 시리다

시인의 말은 무서리다

 

시인의 마음은 산도 바다도 하늘까지도 담을 수 있는 그릇이다

시인은 가난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청빈한 외톨이다

시인은 낡고 허름한 세월 만지작거리는 철없는 늙은이다

 

늘 군중 속에 고독노래 부르는 독백가며

언제나 풍요 속에 빈곤 맛보는 요리사다

 

청순한 말씨 뿌린 언어 밭에서

곱고 고운 말을 가꾸고 가꾸어

말 꽃 피우며 말씨 맺는 주저리는

늦가을 밤하늘에 빛나는 별무리다

 

시인의 길은 외길이다

시인의 정은 끝이없다

가을은 모두가 詩人이다

이 가을에

 

(가을은 모두가 시인이다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