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수 수필] 느림의 미학을 아는 순천사람들

관리자 2019-09-24 (화) 12:20 4년전 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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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수 시인

 

가끔 교통방송을 듣는다. “줄여서 좋은 것이 있다는 아나운서의 말 속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속도와 낭비는 줄이면 줄일수록 좋다는 이야기다. 그렇다. 속도와 낭비는 줄일수록 좋다고 한다. 아마도 느림의 철학에서 오는 미학이 아닐까 싶다.

 

현대인들의 생활 속에서 느림의 미학을 논한다는 것은 뒤떨어진 생각이라고 비웃을지 모르지만 느림의 미학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특히 슬로우 시티를 주장하는 순천사람들의 견해는 느림의 미학을 동경하면서 실천에 옮기고 있는 것이다.

 

조계산자락에 자리한 낙안읍성을 비롯해 선암사와 송광사는 아주 오랜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주암호와 상사호의 맑은 물은 호수로써 비경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용산을 중심으로 순천만습지대와 국가정원을 지니고 있는 순천사람들은 느림의 미학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다.

 

빨리 달리다 보면 놓치는 것이 많다. 낭비를 하다보면 모아지는 것이 없다는 진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빠를수록 좋다는 컴퓨터와 스마트 폰 시대에서 얼토당토 않는 말을 하고 있다며 그 말을 무시하리라 믿는다. 그렇지만 조금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단풍드는 계절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인생의 황혼녘을 그리기도 하고 느림의 철학곡선에 대한 사고력을 키워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느리게 걷기를 좋아하고 느림의 미학느림의 철학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우리의 삶을 느리게 걷기에 비유하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느리게 걷기빠르게 걷기의 반대로 여러 가지의 논란과 논쟁이 있을 수도 있다. 즉 삶의 게으름을 감추기 위해 느리게 걷기를 미화시키지 않았나 하고 반문할지도 모를 일이다. 특히 빠르게 걷기에 익숙한 현대사회에서는 느리게 걷기에 대한 깊은 사고력을 갖지 않으려 할 것이다.

 

사실 시간에 쫓겨 살아간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다. 바쁜 시간 속에서 바쁘게 움직이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짜증이 솟아나고 그로인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다. 다시 말해 사육된 비둘기처럼 자신을 옴짝달싹 못하게 묶어놓은 덫과 같다할 것이다.

 

어찌 보면 빠르게 걷기에 집착한 현대인들에게는 활력과 긴장감이 넘치는 삶에 길들여져 있어 주변을 뒤 돌아볼 여유조차도 없는 삶을 영위하고 있다할 것이다.

 

저자 피에르 쌍소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느림은 게으름이 아니라 삶의 길을 가는 동안 나 자신을 잃지 않고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인생을 바로보자는 의지이다.”며 빨리빨리 에만 익숙해진 현대인들에게 느리게 산다는 의미를 일깨워 주고 있다.

지난 금요일이었다. 필자는 느리게 걷기에 첫 발을 내디딘 아내와 딸을 동반하고 지리산 등산을 했다. 단풍드는 지리산의 풍광은 별 볼일 없었지만, 맑은 공기와 산파도가 몰려오는 지리산 자락은 느리게 걷기연습장으로서 안성맞춤이었다. 중산리에서 법계사를 거쳐 개선문을 오르면서 천왕봉까지의 느리게 걷기의 산행은 또 다른 의미를 부여 했다. 즉 오늘의 삶을 살찌웠고 내일의 삶을 여유롭게 하는 원동력을 비축했다.

 

아마도 그것은 빠르게만 살아왔던 삶들을 지켜보고 그 삶들의 조급함을 엿 보아서인지, 그 주변을 돌아보며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살아가려는 의지와 모습들이 보여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득, 세인들이 말하는 인생의 속도계가 떠올랐다. 흔히 인생의 흐름을 키로 미터로 비유하면, “10대는 10km. 20대는 20km. 30대는 50km. 40대는 70km. 50대는 100km. 60대는 120km. 70대는 150km...”로 질주하는 듯 속도계에 빗대고 있다.

 

이러한 인생의 흐름 속에서 70km 이상의 속도를 내고 있는 인생들은 자신의 인생속도를 낮추려 할 것이다. 아니 더디게 가기를 원하며, 속도계자체를 부인하려 할 것이다. 그것은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안전감이 희박하고 죽음의 문턱이 가깝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속도는 어느 누구도 낮출 수도 없고 멈추게 할 수도 없다. 다만 느리게 갈 수 있는 생각과 여유를 갖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의 생각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을는지 몰라도, 자신의 주위와 주변을 돌아보면서 느리게 걷는 여유와 현명한 생각은 참으로 아름다운 곡선의 삶으로 비쳐지리라 믿는다.

 

어느 날 지인은 빠르게 가는 길은 직선의 삶이고, 느리게 가는 길은 곡선의 삶이다.”며 느리게 걷기를 곡선의 아름다움에 비유하기도 했다.

 

아무튼 순천을 알고, 순천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노을과 단풍의 아름다움 보다 느리게 걷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선호할 것이다. 그 삶이 더욱 값지고 아름다운 색소를 띄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