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수 수필] 지리산 천왕봉정기를 순천정기로

관리자 2019-09-23 (월) 09:02 4년전 752  


bc3090f3ff3a7cd9e67d66ad831b5ac2_1569196930_9645.png

김용수 시인

 

하늘을 우러르는 지명들이 많다. 가까이 있는 지리산 天王峰順天이 이를 방증하듯 하늘은 인간의 마음을 담은 그릇인지도 모른다. 하늘자를 사용하는 모든 지명과 사물들은 하늘을 우러르고 하늘을 따르려는 속내를 지니고 있는 듯하다. 하늘의 뜻을 알고 하늘을 닮으려는 인간의 심리에서 비롯된 사고이겠지만 하늘처럼 무한한 것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한반도에서 하늘이 들어가는 지명과 사물은 부지기수다. 특히 우리나라의 영산인 지리산 천왕봉은 하늘이 내린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대자연의 순기능을 순리대로 풀어가면서 지혜와 겸손을 가르치는 힐링 산이며, 힐링 봉우리이다.

 

順天역시 다를 바 없다. 하늘이 내려준 선물의 땅으로 하늘의 순리를 따르는 곳이다. 아니다. 하늘이 숨겨둔 땅으로 대자연의 숨결을 간직하면서 맑은 공기와 맑은 물, 그리고 푸른 정기가 솟아나는 땅이다. 산과 바다 강이 있는 친환경지역으로 모든 동식물을 비롯해 미생물에 이르기까지 생태계도 다양하다.

 

전라도와 전라남도, 경상도 3개 도와 5개 시,군 걸쳐 있는 산악형 국립공원인 지리산은 총면적이 약440.4(13000만 평)이다. 다시 말해 제주도 면적의4/1이자, 서울시 면적보다는 조금 작은 면적을 지녔다.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라는 뜻에서 유래된 지리산! 수많은 은자들이 도()를 닦으며 정진 해 왔다는 지리산! 명칭마저도 지혜롭다. 그런 까닭에서인지, 쌍계총림 쌍계사를 비롯해 화엄사, 반야사, 법계사, 대원사, 내원사 등 전통사찰들이 많이 있다.

 

기이한 봉우리와 괴석,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헤아릴 수없이 많은데, 동쪽의 천왕봉과 서쪽의 반야봉이 가장 높다. 산기슭에 먹구름 끼고 비가 오며 천둥소리가 요란해도 천왕봉과 반야봉은 청명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는 곧 하늘의 정기를 받는다는 것일까? 모를 일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지리산은 산세가 높고 웅대하여 수백리에 웅거하는 산으로, 백두산의 산맥이 뻗어내려 여기에 이른 것이라 하여 두류산(頭流山)이라고도 부른다. 게다가 지리산(地理山)은 방장산(方丈山)이라고도 하였는데, 두보의 시중 "방장은 삼한 외(方丈 三韓外)이다". 라는 주석에서 방장은 바로 지리산을 말한다고 전하고 있다.

 

지난 금요일이었다. 필자는 순천 땅의 정기를 받아 지리산 천왕봉을 등산키로 했다. 새벽 4시부터 잠이 깨어 산행준비를 서둘렀지만 빠진 것이 많았다. 천왕봉을 오르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므로 대충대충 챙겨서 떠난 산행은 시작부터 난행이었다. 등산스틱도 없이 그냥 소풍가는 식으로 천왕봉을 오르려는 자세부터가 초보임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지리산 천왕봉 등산에서 제일 힘들다는 중산리코스는 한마디로 급경사와 돌밭뿐이었다. 내리막도 없는 급경사지를 기어오르면서 몇 번이고 되돌아서 내려오고 싶었다. 더욱이 아내와 딸아이를 동반했던 관계로 무리한 등산이 아니었나 싶었다.

 

그러나 순천사람은 할 수 있다는 신념이 뇌리를 스쳤다. 하늘 뜻을 따르고 하늘을 닮으려는 순천사람의 자긍심이 움직였다. 그 자긍심은 난행을 신행으로 바꿔버렸다. 물집이 생기며 다리가 휘청거리고 목이 탔다. 진기가 빠져 한걸음 옮기는데도 힘이 들었다. 하지만 포기는 하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되 뇌이면서 입으로 중얼거렸다. “조금 느리게 간다고 흉보는 이도 없을 것이며, 등산장비가 부족하다고 해서 못 오를리 없을 것이다. 순천사람은 천왕봉정기를 받아 순천정기로 이어야한다.”고 말이다.

 

로타리 대피소를 지나 법계사에 당도할 때까지는 별로 고달픔을 느끼지 못했다. 개선문을 지날 때부터 소진된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발목과 무릎이 아파오고 가슴이 터질 듯이 조여 왔다. 그래도 싫지는 않았다. 군데군데 구절초와 쑥부쟁이 꽃들이 피어나고 용담초가 방긋방긋 웃어주는 등산길이 좋았다. 조금의 휴식을 취하는 순간 한 토막의 시 구절이 떠올랐다. ‘지리산 돌눈이다.

 

그냥 박힌 게 아니다

하늘꾸러기로 땅으로 떨어졌다

지리산 기슭에 자리 잡고 하늘 바라보는 돌이다

수없는 발길이 제 눈을 밟고

가없는 세월이 제 눈을 가릴수록

더욱 더 빛을 발하는 지리산 돌눈이다

날마다 하늘입김 쏘이고

시간마다 땅기운 받으며

제자리 지키고 있는 지리산 돌눈

헛 발길에 채이고

뭇 발길에 밟혀도

탓 타령 읊지 않는 돌무더기로

탁한 공기 거르고

탁한 물도 걸러서

힐링 힐링 힐링으로 푸른 열쇠 지닌 돌눈이다

(필자의 지리산 돌눈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