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양심 수필] 하늘이 내린 사람

오양심 2019-09-20 (금) 18:00 4년전 1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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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양심 시인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아버지는 사람이 성장하려면 가정환경이 중요하다고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의 모정을 가르쳐 주셨다. 위대한 어머니의 힘으로, 성공한 아들이 쓴 ‘맹자 천강대임론(天降大任論)’도 공부시켜 주시면서, 하늘이 내린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가슴에 새겨 주셨다.

구척장신인 아버지는

“하늘이 어떤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 할 때는, 역경과 시련을 먼저 주어서 평가를 한단다.”

하고 말씀하시면서 한지 위에 붓글씨로 ‘천강대임론(天降大任論)​’이라는 제목을 쓴 다음

하늘이 장차 큰 사명을 사람에게 맡기려 하면 (천장강대임어사인야, 天將降大任於斯人也)

먼저 마음과 뜻을 괴롭히고(필선노기심지, 必先勞其心志)

뼈마디가 꺾어지는 고난을 당하게 하며 (고기근골, 苦其筋骨) ​

몸을 굶주리게 하고 (아기체부, 餓其體膚) ​

생활을 가난에 빠뜨려 (궁핍기신행, 窮乏其身行)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한다. (불란기소위, 拂亂其所爲)​

마음을 두들겨서 참을성을 길러 주어(시고동심인성, 是故動心忍性)

감히 할 수 없었던 일도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니라.(증익기소불능, 增益其所不能)​

소리나는 대로 적은 한글을 앞에, 한자를 뒤에 적어 책상 앞에 붙여주시면서, 아침에 일어나면 하루에 세 번 씩 읽고 외우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수시로

“딸아!”

“예, 아버지”

“천장강대임어사인야(天將降大任於斯人也)가 무슨 뜻인지 말해 보아라”

“하늘이 장차 큰 사명을 사람에게 맡기려 하면”

“그 다음부터는 줄줄 외워 보아라”

“먼저 마음과 뜻을 괴롭히고……,

아버지는 ‘맹자천강임대론’을 잘 외웠는지, 수시로 점검하셨다.

나는 연필에 침을 묻혀가며 ‘맹자천강임대론’을 한글로 쓰고 한문에는 토를 달아놓고, 입으로는 줄줄 외웠으나, 도대체 무슨 뜻인지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다만

‘아버지는 키가 커서 하늘의 뜻을 잘 아시는 걸까?’

하는 의문을 품고 내가 나에게 자문자답하곤 했다. 다만 학교를 오가는 길에

친구 공순이를 만나면

“공순아! 혹시 너 ‘맹자천강임대론’이라고 아니?”

하고 물으면 고개를 가로 저었다. 오히려 나에게

“그게 뭔데?”

하고 되물었다.

또한 민섭이를 만나서도

“민섭아! 혹시 너 ‘맹자천강임대론’이라고 아니?”

하고 물으면 먹이를 주워 먹기 전의 달구새끼처럼 눈을 빤히 뜨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경심이, 정숙이, 형엽이, 봉섭이, 의섭이에게 물어보아도 ‘맹자천강임대론’을 알지 못해서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혼자 놀기 시작했다. 다만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어떤 날은 책을 손에 들고 나가 바닷가 모래밭에서 뱃고동소리를 들으며 악성 베토벤과 놀았다.

베토벤은 독일 사람이었고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음악가였다. 두 분의 천재적 DNA를 갖고 타고난 베토벤은 4세 때부터 소질이 개발되었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장난을 즐겼다. 베토벤의 인생길 곳곳에 갖가지 시련과 역경을 숨겨 놓았다. 청력을 잃은 음악가가 자신의 소리를 듣지 못했을 때, 그리고 청중의 박수소리를 듣지 못했을 때에서야, 불멸의 멜로디를 탄생시켰다. 3번 교향곡 ‘영웅’, 5번 교향곡 ‘운명’, 6번 교향곡 ‘전원’, 피아노 협주곡 제5번 ‘황제’, 9번 교향곡 ‘합창’ 등이었다.

어떤 날은 책을 옆구리에 끼고 산으로 올라갔다.

팽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준, 마당바위 위에서 성녀 '헬렌 켈러’와 친구가 되었다.

어렸을 때 열병을 앓은 헬렌 켈러는 소경·귀머거리·벙어리였다. 역경을 한꺼번에 겪은 헬렌 켈러는 설리번 선생님을 만나 놀라운 내면의 힘을 발휘했다. 정신력이 강한 그녀는 힘든 일이 닥칠때마다 습관적으로 다시 일어섰다. 크고 작은 고난으로 성장통의 발판을 삼은 후에는, 전 세계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면서 ‘빛의 천사’로 이름을 날렸다. 미국의 월간잡지 ‘리저스다이제스트’에 실렸던 헬렌 켈러의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수필을 읽었을 때였다. 나는 끝내 하늘이 내린 사람의 슬픔을, 억제하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이고 말았다.

맹자는 기원전 300년경 중국 산동성에서 태어났다.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논리가 세상을 지배하던 난세때였다. 그는 처절한 비명과 울부짖음, 피비린내가 그치지 않은 와중에서도,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것을 믿었다. 맹자가 죽은 지 2,50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세상의 문명은 눈부시게 발달했다. 농업시대, 공업시대, 정보화시대를 거쳐 컴퓨터가 지배하는 인공지능(AI)시대가 도래되었다. 하지만 인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인간은 여전히 탐욕스럽다. 기뻐하다가, 성내다가, 슬퍼하다가, 즐거워하다가, 사랑하다가, 미워하면서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 칠정(七情)으로 난세 난세 난난세를 만들어 가고 있다. 맹자가 살았던 시대나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나 여전히 삶은 부조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버지가 라이터돌만한 대가리에 입력시켜 준 맹자의 ‘천강대임대론’은 인생의 진리이다. 하늘이 내린 사람은 어떤 특정인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특권이다. 아버지는 세상은 험난하지만 마음자세의 크기로, 살아가기를 원하셨다.

아버지는 연약하게 키워놓은 여식을 늘 안타까워 여기면서도, 맹자처럼 진리에 가까운 글 한줄 써서 후대에 남기기를 바라셨다. 베토벤처럼, 헬렌 켈러처럼 참고, 견디면서 노력하다보면, 반드시 행복한 날은 오고야 만다고, 어깨를 다독이며 힘을 보태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