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수 수필] 짚시락 물 떨어지는 낙안읍성의 정

관리자 2019-07-03 (수) 05:59 4년전 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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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수 시인>

 

장마철이다. 순천낙안읍성 초가지붕처마를 타고 내리는 짚시락 물소리가 뚜~욱 뚝 정적을 깬다. 때로는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다가도 어느 사이에 고요를 찾는다. 세찬빗줄기를 소리 없이 받아주고, 그 빗물모아 차분하게 흐르는 짚시락의 정서가 그립다. 아니다. 물의 흐름을 따라 구수한 옛날이야기를 쓰는 설화작가마냥 낙안읍성 초가지붕을 떠나지 못한다.

 

언제부터서인가 고향집과 부모형제가 그리울 때면 낙안읍성을 찾았다. 특히 비가 내리는 날에는 비를 맞아가면서도 초가를 찾아 나섰다. 그런 까닭에서인지, 장마철만 되면 초가지붕 처마에서 떨어지는 짚시락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물 여행을 떠난다. 초가지붕에서 시작한 빗방울이 계곡을 지나 실개천으로, 강으로, 바다로 흐르다가 하늘로 오르듯 우리네 인생사도 닮은꼴이 아닐까 싶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를 하고 있다. 더욱이 현대인들은 자신의 고향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 옛 정서를 잃어가고 있다. 즉 낭만과 운치 따위는 현실과 동떨어진 비생산적인 매개체로 생각하는지, 오로지 자신을 위한 생산적이고 현실성 있는 시간을 즐기는 편이다.

 

그런 까닭인지,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오가는 대화는 삭막하다. 대화의 반은 욕설이고 대화의 반은 은어로 지껄인다. 말싸움을 하는 것인지, 외국말인지조차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옛것이 사라지고 옛 정서까지 잃어가는 요즘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무서울 정도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만을 위한 삶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혼자서 살아가는 방법들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이들 앞에서 짚시락과 짚시락 물소리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낙숫물과 낙숫물소리의 이야기를 꺼내들면 그 순간부터 고개를 내저을 것이다. 그 말 자체부터가 늙었다는 것을 뜻하고 고리타분한 이야기라는 생각이다.

 

어쩌면 틈과 여유라는 단어까지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세대들인지 모른다. 순간과 순간을 이어가면서 나눔의 정과 소통의 정, 그리고 사랑의 정을 잊고 사는 극한 현실론자로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치닫는 세상사, 혼밥, 혼술, 혼영, 등이 유행하는 것도 이런 까닭일까 싶다.

 

제아무리 시대의 변화가 심해도 흐르는 시간은 똑같을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조금의 여유를 가져봄이 어쩔까 싶다. 잠시라도 사색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사색시간은 자신의 정신수양에도 좋을 것이다.

 

다시 말해 순천낙안읍성을 찾아서 초가지붕에서 떨어지는 짚시락 물소리를 들어보자, 그 짚시락 물 흐르는 어느 곳이라도 따라가서 낭만의 시간을 가져보자. 그것은 곧 자신의 건강을 지키는 유일한 시간일 것이다.

 

필자는 지난 10여년의 낙안읍성의 삶이 떠오른다. 시를 쓰고 칼럼을 쓰면서 살아온 시간들이 꾸러미로 엮어진다. 잊혀 지지 않고 지워질 수 없는 삶이다. 때로는 힘들었고 때로는 낭만시간을 즐겼었다. 그곳에서 인생의 참맛을 알았었다. 그것은 바로 정이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정이다. 정이 없는 사회, 사랑이 없는 삶은 삭막하고 무의미하다. 그런 까닭에서 틈과 여유를 가져야 한다. 그 여유 속에는 속정이 꿈틀거리고 참삶이 익어가는 활력소가 있다.

 

낙안성 초가지붕에

세차게 떨어지는 빗방울은

추녀 끝 짚시락 물로

수직선을 긋다가

수평선을 긋는다

 

어느 듯

하늘고향을 잃은 빗방울은

옆으로 모아지고

밑으로 모두어서

이정표 없는 곳

낮은 곳만을 찾아드는

유랑시를 쓰고 있다

고랑과 도랑을 헤매고

계곡과 골짜기를 훑고

개천과 강을 쏘다니다

바다로 흐르는 빗방울들

모닥이는 소리 들린다

 

한 방울

두 방울 큰 방울로

고향 찾는 빗방울은

하늘땅을 오르내리다가

낙안성 초가지붕

짚시락을 타고 있다

(필자의 짚시락 물전문)